생성음운론


언어학의 흐름 (생성음운론)

불어생성음운론 입문

 

  서론

 

  인문과학에는 다음 두 가지 특성이 있는데 이들 특성 때문에 자연과학과 비교해 볼 때 뒤진 학문으로 평가받는다. 그 첫번째는 경험적인 연구를 토대로 하기 때문에 그 결과를 유효한 것으로 받아들이기에는 여전히 너무 제한적이고 산발적이다는 것이다. 둘째로 수학과 같은 순수학문과 비교해 볼 때 연구의 결과를 종합하고 그것의 유용성과 효과를 통합할 수 있는 객관적인 도구가 없다는 것이다.

 

  이 연구가 다양하게 흥미로은 결과를 제공하는 것은 다른 어떤 학문문야보다도 언어학 분야일 것이다. 문법과 비교 음성학의 연구가 시작되어 관심이 높아진 이후 언어학은 언어활동의 기능, 특히 언어의 기능에서 보다 세심한 정보를 끌어 내기 위해 다방면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대가들의 작품에서 문체론적이며 문학적인 해석을 하는 무질서한 지식 축적에서 벗어나, 의사소통의 일상적이고 항구적인 실체를 고려할 수 있고 안정된 법칙들을 끌어 내기 위해서 또 개인적인 평가와 선험성을 버리기 위해서 언어학은 나름대로의 노력을 했다. 그렇지만 언어활동 자체의 특성과 인간 특성 내의 언어의 기능에 대한 설명을 하는 데 있어 지금까지도 극복할 수 없는 벽에 부딪쳤다.

 

  오늘날 이 문제와 연관되어 다음 두 가지 주된 경향이 나타난다.

a) 인간 언어는 우리가 기술적인 명세서 더미에서 출발해서 일련의 특성들을 일반화해 주는 충분한 공시적 기술들을 우리가 할 수 있을 때 비로서 알려지고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이들 특성들은 모든 언어 특히 인간에게 부여될 수 있는 것들이다. 어떻든 언어학자들이 관심을 갖는 것은 인간의 뇌가 어떻게 작용하는가는 아는 것이 아니라 언어가 어떻게 기능하는지를 파악하는 것이다.

b) 한 언어의 기능작용을 생각한다는 것은 언어의 특성들 중 어느 분야에 인간의 뇌가 작용하는지를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언어활동에 대한 기본 이론과 언어 습득에 대한, 그리고 보다 추상적인 차원에서 언어 기능에 대한 기본적인 가설을 갖지 못한다면 길다란 목록을 수집해 봐야 소용없는 일이 될 것이다.

  

  철학을 과학분야로 인정하는 현대의 관습과 비교해 볼때 다소 그 논증이 나약함에도 불구하고 언어의 기능작용에 관심을 갖는 언어학파는 철학쪽에 많은 연구노력을 투자하게 하고 역동적이고 활동적인 연구가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연구자들이 아주 엄격하고 추상적인, 아주 형식적인 수학많큼이나 전문가에게도 불가사이한 묘사 기술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는 점을 덧붙여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은 일련의 정상적인 문장을 만드는 모든 단계를 처음 부터 끝까지 통합하려고 하고 있다.

 

  이런 언어학파에 의해 얻어진 결과와 불어 연구에서 보다 엄격한 절차를 활용할 때 나타나는 관심사를 이용해야 한다고 느끼기 때문에 나는 내가 분석하려는 대상을 간략하게 제시한 후, 이 분석이 생성언어학의 방법론을 따르면서 불어 음운론적 분석을 좀더 심층화시킬 수 있는 틀을 설정하려고 한다.

 

  이 방법의 관심사는 주로 언어학사에서 중요한 다음 두가지 사실들에 근거를 두고 있다.

a) 변형생성문법은 언어의 필수적인 요소를 생각하는 것, 기본 골격으로 모든언어를 통합하는 통사론, 통사론의 존재이유를 제공하는 의미론, 그것의 질료적인 형식을 제공하는 음운론 등에 대해 완벽한 통합작업을 하려고 한다.

b) 변형생성문법은 (헤리스의 시도에 따르면) 분석된 대상과는 무관한 추상적인 형식화에 관심을 갖으며 연구된 언어의 특성과 형식과 무관하게 형식적인 언어활동 내에서 모든 언어를 설명할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

 

  이런 사실은 변형생성문법이 모든 비난을 벗어날 수 있고 이미 그것의 목적을 달성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것과는 거리가 멀다. 나는 1장에서 이점에 대해 언급하겠지만 이러한 분석 방법은 가설들에 근거를 두고 있다. 이들 가설들의 명증성은 아직 확실하지는 않지만 언어 사실들의 합리화 과정에서 중요한 진보를 나타내며 이러한 시도들 중 몇 가지를 수정하고 현대 불어에 음운론적인 적용을 심층화시키기 위해, 이러한 작업이 반영하는 노력들을 단번에 정당화 시켜준다. 나는 불어 음성학적 표상과 음운론적 표상 그리고 음운론적인 예들에 대한 통합적인 처리방법에 연관된 문제들을 검토하기 전에 언어학적 기술의 이론적 토대와 많은 대상들을 재고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역시 생각한다.

 

  이 논문은 결국 생성문법의 틀 안에서 언어학적 이론에 적합하면서 다시말해서 언어활동에서 보편적인 총체를 통합할 수 있으면서 동시에 불어의 일상적인 실체와 연속성을 갖을 수 있는 설명들을 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아래에서 우리는 음성기호들의 목록과 이 책에서 참고 표지가 중요한 규칙들과 도식들에 연관되어 쓰인 상징들의 목록을 찾아 볼 수 있다.

 

 

  제 1 장

 

   언어학 기술의 목적

 

  모든 불어 사용자들은 어떤 코드에서 소리의 기호를 발화하고 다른 불어 사용자들이 신호를 정확하게 즉, 발화자의 의도에 따라 이해할 뿐만 아니라 즉각적인 방식으로, 신호를 독창적으로 정리하고 또한, 아주 정확하게 그것들을 해석할 수 있다. 불어 사용자들은 공통적으로, 소리와 메시지를 연결하고, 독창적인 방식으로 다른 메시지들, 즉 무한하게 새로운 메시지를 만들도록 소리를 구성하는데 알맞은 한 체계, 한 코드를 가지고 있다. 불어 사용자 특유의, 그리고 다른 언어 사용자에게는 생소한 이 재능은 불어 언어 능력을 구성한다.  

 

  한 언어를 기술한다는 것은 사용자의 언어 의사 소통을 지휘하는 체계를 이해하는 것이다. 춈스키-할레(1968)의 논문에서 보면, 언어를 기술한다는 것은 문법을 세운다는 것이다. 문법이란 즉, 사용자 언어 능력의 명시된 모델이다.

 

  그러나, 춈스키와 그의 생성학파에 있어서, 언어학적 분석은 일반 언어학 이론과 언어의 형식 문법 두가지를 이용하여 접근해야 한다. 첫번째 방식은 언어를 생성하는 내적 구조와 언어 활동(langage)에 근거를 둔, 기술에 영향을 끼치게 될 판단의 성격과 연관성 그리고 문장 생성과 문법의 이상화에 적합한 법칙을 지배하는 기준에 대한 더욱 보편적인 영역의 문제에 답해 줄 것이다.

두번 째 방식이란 일반 이론에서 형성된 원칙들로부터 자연스럽게 유래되고 형식 논리성에 본질적으로 근거를 두고 있다.

 

  1. 일반 언어학 이론

 

  <<...인간은 고유의 능력, 말초 기관에 의해서도, 일반 지성에 연관되지도 않는 그리고, 언어 (langage)의 일상적 사용의 창조적인 면이라 부를 수 있는 것에서 나타나는 단일한 지적 구조형식을 가지고 있다. ; 이 능력의 특성은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주고 어떤 자극과도 독립적이다는 것이다.>>(춈스키, 1969, p.20)

 

  플라톤, 바론, 도나터스, 세인트-오거스틴 또 역사상 모든 유신론자들에게서도 찾을 수 있는 이 주장은 여기에서 유래될 문법에서 단번에 믿는 훨씬 더 튼 영향을 가지게 된다. 이 주장은 사실상 언어 차원에서, 스키너(1957)와 행동주의자들에 의해 익숙해진 자동형의 모든 구조로부터 체계적인 탈피를 내포하고 있다 : 전통적 철학이 이성과 추상이라는 것을 통해 가치있는 완벽한 정신적 구조를 내포하는데, 또한 이 주장은 무한성에 귀착하여, 타당성이나 오류를 전혀 증명하지 못하는 불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이미 설명했던 바와 같이, 이엠슬레브는 1943년 그의 서론(Prolegomenes)에서 이론이란 참도 거짓도 아닐수 있다고 말했다 : 이론은 실체의 범주 안에 있지 않고 과학의 발전을 위해 중요한 것은 사실과 이론적 예측의 조합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이론은 사실과는 독립적이기 때문에 대상(objet)을 다시 만들어 내고자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지 않다 : 이론은 단지 실제 인식의 범주에서 사실의 충분한 표상이나 설명이 이루어 질 수 있도록 해준다.  

  

  그러나 우리 이야기로 돌아와 춈스키 입장의 주요한 설명을 간단히 알아보자.

 

  1.1 모든 외적 자극의 거부

 

  이 주제에 있어 변형주의자들은 모든 외적 자극이 의사소통 과정에서 배제 되어야만 한다는 생각 하에 바람직하지 못한 혼돈을 빚고 있다. 그러한 것은 무의미하다. 아이들은 감각이 활동적이고 외부로부터 오는 자극에 민감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를 부르거나 무언가를 물었을 때 단어를 반복하거나 문장을 만들기도 하고 반응하게 되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교육받은 성인의 일상 대화에서조차도 소리 자극의 개입은 항구적이다 : 자극의 개입 없이 말하는 주체간에 접촉이란 없다. 사람들은 심리 역학 조건화의 결과로써 기억화에 대해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극은 언어 행동을 시작하게 할 뿐이다 ; 자극은 행동 그 자체와는 관련이 없다. 또한 자극은 언어학 규칙의 구조나 형성과도 무관하며, 능력과 그 기능의 차원에서 이 용어가 행동주의 의미에서 이해되는 모든 자극을 변형주의 언어학은, 구조화의 다양한 문장에서 그리고 언어(langage)특성에서 마치 외부적인 것처럼 배제한다.

 

  이러한 것은 외부 자극이 지난 25년간 미국에서 그래왔고, 더 최근에는 유럽의 대부분의 국가들이 언어 교육에 이용하고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반대로, 교육 상황이 학생들에게 언어학 자료를 깨닫도록 강요하면 할수록, 언어 능력은 더욱 빠르게 학생들이 규칙을 세우고 언어를 배우도록 한다. 그러나, 문제는 그 점이 아니다 : 그것은 오히려, 행동주의자들과 역학자들이 믿고 있듯이 <<언어 습관의 습득>>이 <<한 언어의 인식>>과 같은 것인지 아니면 춈스키가 주장하듯이, 언어의 문법인지 혹은 우리가 이미 말한대로  사용자 언어 능력의 자명한 모델인지 아는 것은 자극 (작용)과 직접적 관련을 가지는 게 아니라 독립적인 내적 능력에 근거를 두고 있다.

 

  언어학이 이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그러나 언어학 기술의 모델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출발점, 심리학적 이론이 필요하기 때문에 이런 견해들이 언어 모델에 미칠수 있는 중대한 결과를 알지 못하고선, 한 어떤 의견이나 또 다른 의견에 치우칠 수는 없다. 이것이 전통적 구조주의 언어학과 변형주의 언어학에 존재하고 있는 차이점이다.

 

  1.2 가치 = 간결성 = 경제성(valeur=simplicite=economie)

 

  춈스키-할레(1968)가 가치, 간결성, 경제성의 용어를 동의어로 본 것은 단순한 우연에 의한 것은 아니다. 일단 언어 능력이 일반 지성과 말초적 기관, 모든 자극과는 독립적이며, 선천적이다는 원칙을 인정하면, 만약 언어학적 면, 인간의 측면에서 어떤 의미있는 가치를 이루어내고자 한다면 언어 능력의 연구는 가장 추상적이며, 가장 축소된 또한 가장 단순한 수준에서 이루어 질 거이다. 한 언어의 규칙 제정에서 보편화하면 할 수록, 이 규칙들은 다른 언어들에서,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모든 언어에서 나타나는 일이 많아 진다. 그래서 여기에, 규칙 형식화와 기술적 협약이 중요하다. 여기에 음운학적 방법을 위해 춈스키-할레 세운 협약의 예가 있다 :

 

  규칙의 사열 가치는 가장 짧은 표상 기호들의 수에 반비례한다.

 

  <<한 규칙의 기호 수가 역으로 이 규칙에 적용되는 의미있는 언어학적 보편성 단계(정도)에 반비레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른 말로 하자면, 이 협약은 가장 일반적이고 가장 간결한 규칙만이 언어학적 의미를 가진다 즉, 언어 활동(langage)에 관한 보편적인 현상들의 연구에서 인정받을 수 있다.

 

  보편성이라는 개념 그 자체가 무언인가는, 엄격한 법칙보다는 아직 잘 정의되지 않은 방법론적 가정과 더 많은 관계가 있다. 이 법칙이 기반을 두고 있는 논리적 요소는 일반성이 개별성(특성)을 포함하고 있으며 역관계는 성립되지 않는다. 그리고 규칙이 추상적일 수록, 이 규칙은 보편적이며, 더욱 수많은 경우에 적용될 수록 범세계성, 심층적인 실체라 부르는 것에 더욱 가깝다.

 

 1.3 언어학적 범세계성(보편성)

 

  변형주의 이론은 언어 활동(langage)의 성질과 특성에 연관된 일련의 가정으로 이루어 진다. 이 특성들은 마치, 언어를 배우는 모든 아이들이 사용할 수 있는 것처럼 정의된다.   

 

  이미 확고한 특성들-본질적인 언어학적 보편성-이 많은 한 체계(systeme)가 존재하리라는 것은 이하의 사실들을 염두에 둔다면 꽤 자명한 일이다 : 모든 정상 아동들은 이 특성들을, 주어진 (대기성) 자료들로 규정하지 않더라도 매우 복잡하고 추상적인 문법을 알게 된다.이런 과정은 매우 빠르게, 이상적인 것과는 먼 조건에서 일어난다 ; 그러나, 이해력과 경험이 여하튼 많이 다를수 있는 아동들 간에는 커다란 차이점은 거의 없다.

                                                        영어의 소리 양상, p.4

                                                                 

  이 의견에 대해 너무 경험적 특성을 비판하고, 어떤 세부사항에 대해서는 반대할 수도 있겠지만 전체적으로 이 의견은 꽤 타당하다. 춈스키가 이 관점에서 보편성을 찾고자 할 때에는 이 문제가 부각되지 않는다. 아동이 언어 활동(langage)을 완전히 익히게 되고, 거기에는 주위 언어를 배우게 되는데 더 효과적인 <<특성적 체계>>가 먼저 이루어지고 있음이 가능하다 ; 그러나, 이 특성들이 언어학적인지 어쩐지 명백히 식별할 책임은 없다.

 

  완전히 이론적인 춈스키의 이 입장은 이론(異論)을 불러 일으킬만하다. 이 주장은 게다가, 각각의 언어는 단지 변형에 의해 만들어진 일탈(다양성)일뿐이며, 그 언어의 기본적인 언어학적 구조에 해당하는 선천적 항구적 틀(schema fixe inne)을 아동에게서 찾을 수 있는 것으로 요약된다. 이 언어학적 타입의 핵심으로 구성되는 항구적이며 보편적인 틀은 게다가, 논리성을 띠고 있다.

  

  삐아제가 구조주의에 대한 그의 책에서 그것에 대해 이야기 하듯이, 인간에게 있어 비언어 상태에서 언어 상태로의 이행, 즉 언어학적 틀의 형성, 판단력,이성(raison)의 형성, 계승을 통한 전달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이런 주장을 뒷받침하는 선천적(생물학적) 기반은 지금으로서는 매우 약하다. 게다가 실험 심리학은, 기호의 기능은 언어활동(langage)만을 포함하는 것이 아니다는 것과 동작에서 순서, 대응(일치)과 유추의 끼워 맞추기를 조정하는 이해 구조가, 마치 인간처럼 우리의 독창적인 대부분의 행위를 조절한다는 것을 알려준다. 언어 능력은 춈스키가 주장하는 만큼 그리 특유하지 않은 것 같다. H. Sinclair de Zwaart(1967)가 그것을 증명하기 시작했던 것처럼, 인간 두뇌의 조작적인 구조화가 언어적 구조화를 선행한다면, 이미 학습 전에 보편적인 언어적 구조들과 형식적 문법의 모델을 포함하고 있는 항구적이며 선천적인 틀이 말 못하는 사람(infans)에게도 존재하는지에 대해 심각한 의문점들이 제기된다.

 

  다른 한편, 예를 들어 심각하게 마르띠네(1968, pp 206-222)와 다른 언어학자들이 의문을 제기하는 것인데, 만약 모든 언어에서 SN-SV(명사구-동사구) 기능적 결합의 존재를 실험적으로 밝혀낸다면, 그런 것이 보편적 결합이 선행적이거나 선천적인 언어 구조에 속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사실상, 만약 언어들이 단 하나의 모태어와 관련이 있다면, 언어란 삐아제(1968, p. 63)가 말하듯이, 강제적인 방식으로, 세대에서 세대로,(...)연속적으로(...)그리고 중단되지 않고 변형되는 필연적인 사회 사실이기 때문에 역사적 사건과 관련이 있다고 학자들은 항상 논쟁할 것이다.

  

  그래서 세 가지를 구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 (1)모든 인간들에게서 나타나는 것으로 즉, 범세계성(보편성:universel) (예 : 말하는 능력) (2)선천적으로 강하게 전달되는 그리고, 그 이름이 제시하듯, 태어나면서 인간 내부에 존재하는 선천성(inne) (3)내적 조직 형식에 관계하고 적어도 재능처럼 전달되는 이성이나 논리성(rational ou logique).  처음 두가지는 그 정의가 뚜렷하지만 논리성이라는 단어는 그 의미(contenu)가 불확실하다. 그래서 이 문제에 대해 가장 모순적인 의미로 이해한다해도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그것은 절대적 논리에 관계된 것일까? 논리는 형식화되고 상징화 된 공리적 연역일까? 그 조작은 연상 연관과 상응관계의 분석적 절차에 따른 분류의 배열에 따른 것일까? 논리성은 지식과 관련이 있는가/ 논리-수학적 추리는 인간적 논리의 추리를 재생산하는가? (이 주제에 대해 빠아제와 인헬더(1967)를 참고하라)

 

  실험적으로 또는 연역적 방식으로 행해진 보편성에 대한 이 연구는 현대 언어학에 있어 그 핵심을 이룬다. 만약 한 언어를 연구하는데 있어, (동시에) 다른 언어들과 연관시키지 않는다면 사실상 큰 성과는 없을 것이다. 생성주의자들은 이론적으로 인간 언어 전체에 적용할 수 있는, 매우 일반적인 선험적 모델에서 부터 출발하고 특히 이런 저런 언어를 정의하는 자질(trait)을 이끌어 내고자 하였다.

 

  이 책이 특히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음운론에서, 음운록적 단위의 정의는 이론적으로 모든 (알려진) 언어에 적용될 수 있는 변별적 특성에 따라 이루어 진다. 각각의 음소는 각 특성에 따라 +나 -로 정의되는데, 그 특성은 일반적으로 아래와 같다 : 모음성(vocalique), 자음성(consonantique), 고음(aigu), 전설(anterieur,diffus), 후설(posterieur,compact), 중음(grave), 측음(peripherique), 연음(continu), 조찰음(strident), 유성음(voise), 비음(nasal) 등.

 

  이론적으로, 어떤 언어이든지간에 한 음소는 이 모든 특성을 통해 표시된다 ; 사실상, 단일한 언어 내부에서, 규칙의 일반화 맥락에서 실현하는데 최대 경제성을 이유로 어떤 특성은 잉여적이며 기술에서 제외될 수 있다(제외되어야만 한다.)

  

  사용한 방법이 무엇이든지 간에, 모든 언어에 적용될 수 있도록 충분히 일반적인 특성을 찾는것이 필요불가분하다 : 이렇게, 각 기술에 가치를 부여하게 될 보편적 규칙을 (실험적으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며, 우리는 인간 언어 활동(langage)의 일반적 법칙을 얻게 될 것이다.

 

  2. 언어의 문법

 

  그러나 엄격한 의미에서, 직접적 전단계인 구조주의 언어학에 비해 변형주의 언어학을 하나의 발전으로 간주하여 모든 기본적인 가정을 수용할 필요는 없다. 야콥슨, 춈스키, 포스탈과 다른 많은 학자들(프랑스의 루웨)은 여러 번, 자율적인 레벨을 이용한 분석이 언어활동(langage)을 기술하기에는 부적합한 과정이라고 설명하였다 (Lamb, Gleason - constructional grammar, Pike - Tagmemics, Hockett - Constructional grammar, Harris - String amalysis, Wells - Hjelmslev, Togeby - Glossematique et structure immanente). 변형은 잘못 형성된 (또는 부정확한) 구조들을 여과시키고 레벨이나 목록을 이용한 구조 연구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조합력을 가지고 있다. 변형은 (언어 수행과 언어 능력의 차원에서) 언어활동(langage)의 창조적 면을 중시하므로 생성 문법(grammaire generative)이라 부른다.

 

  게다가, 변형주의 언어학은 통합적이며, 각 형태와 요소란 전체(ensemble) 안에서 그리고 전체의 비교 하에서만에 나타나고 분석될수 있는 것으로 여긴다. 구조적 분석에 대한 모든 가치를 부정하지 않고, 생성 또는 변형주의 문법은 이런 역할을 한다.

  (1) 정확한 발화를 인정한다.

  (2) 부정확한 발화를 배제한다.

  (3) 아래와 같은 것을 변별지으며, 사용자의 추측에 의한 인식(connaissance)을 설명한다.

    a) 보기에 다르나 메시지는 동일한 문장들 (동의성, synonimie)

    b) 보기에 동일하나 메시지가 다른 문장들 (중의성, ambiguite)

    c) 문장의 다양한 양식(긍정문, 의문문, 부정문 등)

    d) 다른 문법적 범주의 하위 범주들과 그들 사이에 나타나는 범주의 관계(분류, 분절 등)

 

  한 언어의 기술은 측정할 수 있는 사실들(faits mesurables)의 목록과, 완벽한 분류를 포함할 뿐만 아니라, 사용자는 대화자(상대방)의 언어 사용 뿐만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의 언어 사용도 평가하고(1) 새로운 문법적 문장을 무한히 생산할 수 있으며(2) 비문법적이고 /또는 끝나지 않은 어떤 문장들을 정확하게 해석할 수 있도록 하는, 언어적 직관의 종류나 인식의 특이한 양식(type) 설명한다.

 

  한 언어의 언어학적 기술은 이러한 결과를 가져야 한다 :

  1. 모든 단순한(또는 사용자가 그런 것으로 이해한) 어간, 어미, 어휘적, 문법적 형태소와, 문장 안에서 해석과 삽입에 필요한 모든 표시와 그 의미를 포함하고 있는 사전: 이 사전은 (최소 변별 자질) 음운론적 성격에 따라 기술되고 다른 식으로는 예측이 불가능한 것만을 포함하고 있다:

  2. 달리 예측할 수 없는, 기저의 통사적 구조(structures syntaxiques de base)의 목록과 심층 구조를 다루는 연사 규칙:

  3. 문법적 문장을 다루고 열거하는데 알맞은 통사적 변형 규칙들(regles de transformation)(다른 용어로, 통사적 예측 가능성 법칙);

  4. 어휘 문맥에 따라 예측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조정하는데(또는 열거하는데) 알맞은 의미론적      규칙들(regles semantiques)(다른 용어로, 의미론적 예상 가능성의 법칙);

  5. 음성의 상황(contexte)에서 예측 가능한 모든 것을 조정하는데(또는 열거하는데) 알맞은 음운론 규칙들(regles phonologiques).

 

   구조 분석의 범위 내에서 오랫동안, 그리고 합당하게, 언어학 분석 결과를 기능에 따라, 변별적 분석의 여러 레벨이 있다고 여길 수 있었다. 이런 생각에 의해, 각 레벨에서 다른 방식으론 지적하기 어려운 현상를 추론해 낼 수 있었다.

 

  게다가, 모든 기술 단계를 더욱 통합하고 그 전 언어학이 처리 방법의 일관성을 이유로 해내지 못했던 것을 각각 기술(technique)끼리 나타내고 설명하도록 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그 변별적 자질을 가진 어떤 음소가 유효하고, 모든 음소의 전체적 관점에서 보지 않고서도, 다르게 예측할 수 없는지(잘 예측할 수 있는지) 어떻게 아는가? 그 자체의 음소의 연속을 고려하지 않고서, 어떻게 한 언어에서 나타나는 소리 단위의 음성 분류를 세울 수 있는가? 어떤 이유로 야콥슨-판트-할레는 n은 4.1에서도 확산되고 k는 음압 3.0에서도 밀집성을 지닌다고 주장할 수 있는가? 다시 말하면, 어떻게 다른 단위들은 제외한, 몇몇 단위의 유효성을 알지 못하고서도, 다른 말로, 하나 혹은 여러 개의 구체적 형식들(formes)의 근원이거나 시초인 하나의 기저 형식을 추상화시킬 수 있을가(떼어 놓을 수 있을까)?

 

  분석 레벨(구조적 용어에서)과 추상화 레벨(생성주의 용어에서)이 분석의 다른 두 단계에 해당되고, 이 레벨들은 서로 상보적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전자는 자료군(corpus linguistique)의 주된 조사 계획에 속하고, 후자는 전체적 체계의 설명과 재구성에서 이루어진다.

 

  생성문법(grammaire generative)의 가장 가치있는 기여 중의 하나는 자치적(autonome) 레벨의 존재의 강력한 부정이 아니라 다른 데 있다.(postal, 1968) ; 이 문제가 뚜렷한 이점을 제공하지만, (처리) 방법 수단이 아닌, 언어 활동에 대해 언어학자들이 이루어 낸 기본적 개념을 밝혀준다. 더구나, 용어 간에 혼돈이 있는데, 특히 <<추상적(abstrait)>>라는 단어가 어떤 이들에게 존재하지 않으나 간단한(적합한) 것을 의미하고(inexistant mais commode) 또 다른 이들에게, 인간 논리에서 좀 더 높은 레벨에 존재하는 것을 의미한다(qui existe a un niveau plus eleve dans la logique humaine). 게다가 두뇌가 소리 단위를 어떻게 구분하고 기억하는지 그리고 이 단위를 어떻게 통합된, 또는 통합되지 않은 체계로 세우거나 아니면 이 두 가지를 동시에 하는지 알 수 있는가? 단지 인지 심리학만이 이 질문에 답할 수 있을 것이다. 인지 심리학이 답을 제시할 수 있을 때까지, 이론가들은 실체(realite)에 가장 적합하다고 여기는 이념을 주장할 것이다.

 

  그러나, 선험적 구조 기술에 뛰어난 생성 문법은 언어 그 자체와는 독립적인 추상화 단계나 형식 보편화(une echelle d'abstraction ou de generalisation formelle)를 세우고 규칙에 의해 예측할 수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기본적으로 구분하면서 언어학 분석 방법에 새로운 것을 기여하였다. 하지만 해결할 문재가 여전히 산재해 있다 : 기저의 표상 즉 사전과 구체적 표상 즉 음성적 표상이 취해야 하는 형태(forme)의 예를 들 수 있다.(Kiparsky, 1968) ; 또한 그 단어가 기술적(technique) 어휘에서는 소멸된 자료군에 부여되는 완전히 자의적 가치를 생각해 낼 수 있다. 앞으로 몇 페이지에 걸쳐 이 문제를 적절하게 재검토하고자 한다.

 

  3. 자료군 실행으로 복귀

 

  불어의 변형 분석은(Schane, Ruwet, Gross) 통사론, 음운론, 의미론, 문법성, 용인 가능성 등을 다루고 있다. 그러나 내가 읽은 바로는, Dubois를 제외한 어느 부분도 사용한 자료군의 근원과 특성(nature)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나는 이런한 침묵(silence)이 전통적 문법과 사전에는 (무작위로 쌓이지 않고) 현재 편집된 단일한 불어의 존재를 의미한다고 본다. 예를 들어 Schane(1968)은, arrivames, arrivassions과 같은 동사형이, 마치 통용되는 구어 레벨에서 어떤 가치를 지니고, 불어 사용자들이 대화하면서 이용하는 것처럼 분석하고 다양한 동사 변화간의 구분을 짓는다. 가장 현학적인 글에서조차, 현대 용법이 접속법 반과거, 조건법 과거 1형과 2형에서처럼 동사형을 완전히 따르지 않고 있음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또한 단순과거(j'arriva, nous arrivames)가 <<19세기 (표준) 모델>> 문법의 특징이고, 문어에서만 사용되고 있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또한 , 사람이 말하느냐, 쓰느냐에 따라 매우 달라지는 통사론과 어휘론도 이와 같은 경우이다. 그 저자들은, 단지 기본적인 불어를 조사하였다는 것과 이 구어에서 사용되는 소수의 언어학적 형식에 대해 황당한 결과만을 제시하고 있다는 것을 잊었거나, 또는 지금 글로 쓰여지고 있거나 지난 2세기 동안 쓰여진 모든 것이 오늘 날 말하여 질 수 있고, 결과적으로, 이 모든 것이 단 하나의 같은 분석으로만 기술되어야 된다고 여겼던 것일까? 왜, 언어 역사에서 단지 18세기만 되돌아 보는걸까? 역사적이고 병합적인 특성이 지난 몇 십년동안 문제시 되지 않았던 것처럼, 권위있는 문법과 사전에만 나타난 언어를 선택하는 것일까? 다른 말로, 왜 공시성과 통시성을 혼돈하고 있는가? 이 문제에 대한 결정은 분석 결과에 중대한 영향을 끼칠 것이다.

 

  한편, 가장 광범위한 언어를 기술하고자 하는 것이 당연한데, 여기에서 광범위하다는 거의 교육되지 않은 언어에서 가장 현학적 언어에 이르기까지 모든 언어 레벨을 의미한다. 다른 한편, 이 언어에서 끄집어내는 법칙은 통용되는 구두 순준에 속하는 구어의 법칙과는 다르다. 예를 들어보자 : Schane(1968)은 그 동사 변화를 나타내기 위해, 일련의 동사 어간 모음을 분석했을 것이다 : 그래서 내 의견으론(Bibeau, 1968), 통용되는 불어 구어에는 매우 과정, 수(nombre), 법칙 적용을 한정하는 단 하나의 동사 변화만이 있을 뿐이다.

 

  난 여기에서 할레가 Readings in the philosophy of Language에서, 뒤이어 주된(majeurs) 법칙에 통합되는 소수(mineures) 규칙들인, 문법의 하위 구분 끝에 나타나는 고립 규칙들(regles isolees)을 첨가시킴으로써 음운론적 변화 이론을 제시하고 있는 한 논제를 생각한다. 실체적 언어학 기술이란, 접속법 반과거, 현재 용법을 포함한 언어의 상당 부분 (어째튼, 이해 차원에서 들면) 즉, 그 언어의 모든 면에서도  기술되는(쓰여지는, ecrite) 언어는 구술(oral) 언어가 그러한 것보다, 꽤 앞선 세대의 불어 사용자들만이 배웠고, 그 언어는 같은 방식으로 기능하지 않는다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래서, 할레처럼, 음성의 발전에 대해, 기술 언어에 알맞은 규칙들은, 음운론적이며 이미 존재하고 있는 규칙에 통합되지 않는 문법의 하위 구분 끝에, 특수한 방식으로, 구술 언어 규칙에 덧붙여 진다고 전제할 수 있다. 다소 자동 적용 단계에 다다른 새로운 규칙을 포함하는 모든 것들과, 세개나 네개의 동사 변화를 가지는 기술 언어의 동사 체계를  하나의 변화형을 가지는 구술 언어 동사 체계에 통합시킬 정도로 경제성(economie)이 높을 지는 확실하지 않다. 언어학자들은 구술 규칙과 기술 교정 규칙과 규칙의 여러 규칙 간에 정립되고, 단지 어떤 사회-문화적 상황에서만 나타날 수 있을 규칙의 여러 단계에 대해서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의 경험을 통해 어떻게 같은 두뇌가 여러 다른 언어 체계들을 겹겹히 올려 축적할 수 있는지 알 수 있기 때문에 규칙 중첩(superposition)의 개념을 배제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난, 불어 사용자가 어간 모음, 접속법 반과거, 조건법 제 1, 2형, 단순 과거 등이 없는 단 하나의 동사 변화를 가지는 (첫번 째) 구술 동사 체계와 기술 언어에서 사용되는 형을 제시하는, 앞에서 열거된 두번째 동사 체계를 가진다고 생각하는 것을 결코 터무니 없다고 보지 않는다. 반대로, 이러한 것은 <<맨눈으로도 볼수 있는(visibles a l'oeil nu)>> 언어적 <<계층>>(couches linguistiques)이 사회적 계층(couches sociales)을 표시해 주고 있음이 잘 나타나는 사회-문화적 현실과 일치한다.

 

  결국, 생성 문법이 찾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가장 추상적이며 가능한 한 가장 단순한 규칙들의 공식화 뿐만 아니라, 한 인간 그룹이 약 40여 개의 최소 소리를 가지고 수천개 문장을 조음하는데 사람들이 사용하는 것과 같은 언어의 실제 체계의 기술의 추구하고 있다. 만약 언어학 기술이 두 목적 하에, 즉 가장 추상적이며, 아마도 가장 범세계적 차원에서, 그리고 가장 구체적인 사회 문제 차원에서 실체(reel)에 접근하지 않는다면 기술은 무슨 소용있겠는가? 그 목적은 무엇일까?

 

  만약 우리의 가정이 맞는다면, 이것은 쓰여진 (비슷한) 짝을 포함하는 한 언어의 언어적 기술은 쓰여진(ecrite) 언어의 구술 문법을 고려하기 전에, 통용되는 구술 부분을 다루는 규칙을 세우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 우리는 마치 언어 습득이 순간적인 것처럼 기술하였다. 물론 그렇지 않다는 것은 자명하       다. 언어 습득의 더욱 실체적 모델은 아동의 전제적 예비 언어 자료(donnes linguistiques         premieres)의 사용 순서와 자주 새롭고도 더욱 복잡한 자료 해석에 대한, 학습의 전 단계에       서 발전된 전제적인 가정의 결과를 연구한다. 한층 실체적인 이 연구는 너무 복잡해서 지금       시도해 본다하여도, 의미있는(significatifs) 결과를 얻을 수 없다. 난 우선, 위의 연구는 이상       화가 어느 정도 가능할 때 더 세밀하게 다루기로 하고, 어떤 전제적인 대략적 접근 안에서       우리가 주장했던 이상화된 모델의 세부 사항을 연구하는 편이 더욱 성과 있으리라 본다.         우리는 사람들의 다른 선택 점들과 비교하면서, 거시적인 연구 계획의 유효성에 비추어          입장을 취해야 한다.

 

                                                                         춈스키-할레

                                                                 영어의 음성 양식 p. 331

 

  이 주장은 더욱 완벽하고 전체적인 또, 결과적으론 통용되는 구술 언어를 분석하여 얻게 되는것처럼, 그리 높지 않은 언어 능력을 포함하는 한 이상적 언어능력의 이상적 모델을 발견하고자 한다. 변형주의자들은 이상화된 모델은 이론적으로 실재 모델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전자에 더 많은 가치를 둔다. 저자들은 좀 더 광범위하게 주장하고 있다 : <<만일 언어 습득이 순간적이라면, 모음 교체(les alternances vocaliques)를 포함하지 않는 표상을 가지는 기저의 어휘 형식(formes)은 심리적으로 실체적일 것이다. 이 언어에 대한 이 주장은 옳다!>>

 

  물론, 총체적인 이론(la theorie des ensembles)에 대한 추론 범주에서는 이 주장이 옳다! 그러나 이 첫번째 부분에 따라 세상 언어들을 완전히 분석할 수 있는 근원으로 삼는 지적인 -더구나 열광적인- 유희라는 점에서 이 주장이 그르다는 점을 확실히 알 수 있다. 그것은 이상적 언어 능력이 어떤 것인가이며 그렇지 않으면, 공시적 사실과 통사적 사실, 상용어(번번히 사용되는 단어)와 한 사람만이 사용하는 특수어(고유어), 연상 형식과 관여 형식(문체적 요소와 기능적 요소) 등을 언어 용법에서 더 이상 식별할 수 없는 학식있는 이상적인 사람의 언어 능력이 무엇인가 이기때문이다. 사실상, 교육 받은(학식 있는) 사람은 언어적인 것이 아닌 역사적이거나 문화적인 특성의 수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학식 있는 모든 불어 사용자들이 접속법 반과거를 사용할 줄 안다는 것은 분명하다 : 그러나 여기에서,  어떤 지식이란 치즈는 술을 곁들이지 않고는 먹지 않는다를 의미하는 사회적 원칙의 지식에 비교할 수 있을 지식과는 다를까? 난 여기에서는 하나의 기본적인 요류와 관련있다고 본다. 19세기 불어 요소들을 안다는 사실이 이 요소들이 현 체계의 일부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전혀 언어학적 논리성없이 사람들이 외국어 단어를 도중에 사용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접속법 반과거를 담화 도중 끼워 넣는다(또는, 다른 사람의 담화에서 접속법 반과거를 이해한다).

 

  엄밀히 말해, 사회적 사실을 암시하기 위한 것처럼, 사람들이 꽤 한정된 계층이 이 경우에 사용하는 여러개의 통사적 구조와 어휘 단어로 똑 같은 것을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형들은, 어떻든 하나의 언어학적 군의 부분을 이룬다고 비난할 수도 있을 것이다 : 그러나 이 형들이 다른 형들과 같은 식으로 체계에 동화되지 않으며, 언어학 기술에서 그 기능이 의존적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보기에, 언어에 숙달된 사람들에게 있어 대부분의 기술된(ecrit) 불어가 마찬가지이다. 왜 가장 복잡하고 모호하며 가장 과대 평가 받은 형식 안에서 문법적 모델을 이상화시키는가? 왜 어떤 사용자의 가장 높은 언어 지식 수준에서, 대화자의 90%가 알지 못하는 규칙에 대한 설명을 추구하는가? 왜 이상적인 사람은 최고의 언어 학습을 해낸 것처럼 여기는가? 왜 오히려 다른 수준이 아닌 학습과 언어 능력의 이 수준에서 문제가 되는걸까? 문학의 가장 난해한 형식들은 부적당한 것이 아니지 않을까?

 

  이 이상화의 연관성에도 불구하고, 선택된 이상적 수준이 사실상 다른 것을 포함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면, 이것은 아마도 충분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 생각에, 이런 것은 매우 애매하다. 한편은, (1)예를 들어 학술 단어와 비교해서, 어떻게 대중적 단어가 발전하는지 관찰해야만 한다. (2)문학적 언어 규칙의 한없이 복잡한 형식과는 대조적으로 통용되는 구술 수준에서 가장 단순한 규칙 적용의 정확성(규칙성)을 인정해야 되는지 확인해야 한다. (3)<<학식있는사람>>이 상황에 따라 한 언어 수준에서 다른 수준으로 용이하게 넘어가는 것을 염두해야 한다. (4)어떻게 언어에서 필요불가결한 것이 궁극적으로 대중 형식들(les formes populaires)인지 알아보는, 다른 목적에 의한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  즉, 정신 과정에 가장 가까운 법칙, 심리적으로 가장 실체적인 법칙들은 역사와 학습에서, 모든 사용자 100%가 거치는 언어의 첫번째 레벨인 가장 보편적 수준에 속하는 법칙이다는 것을 고려하는데 합당하기 위해서, 어떻게 언어에서 절대 필요한 것이 궁극적으로 대중적 형식인지 알아야 한다. 다른 한편으론, 전통적 변형주의 기술에 적합한, 기저의 규칙과 표상형식의 완전한 동화의 가정이란 이 가정이, 경험적으로 관찰될 수 있는 사실(예를 들어, 언어 위상처럼)과 일치하는 형식 문법에도 해당된다는 조건하에서 바람직해 보인다.

 

  습득된 모든 문장 내의 언어 활동에 대한 연구가, 현재로선 과도한 욕심으로 생각되지만, 우리는 교양있는 언어의 좀 더 자의적인 수준보다는 분석을 시도해 볼만한 통용되거나 중급 수준의 불어, 영어 그리고 소위 문명어에 대한 충분한 경험적 자료를 가지고 있다. 이 분석은 지방 토착어 분석과 더욱 쉽게 비교될 수 있을 것이고, 비교 될만한 사실에 토대를 둔 한 귀납적 보편화 가능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이 방법 결정은 생성주의 분석 기술을, 단지 조금씩 다른 가정에 적용하면서 사용하는 데 걸림돌이 되진 않을 것이다.

 

  이 단계에서, 춈스키-할레(1968), 즈위키(Zwicky) 및 몇몇 다른 학자들이 설명했던대로의 자연성의 개념과 Postal이 토의했던 유표성의 개념을 다룰 필요는 없다. 앞으로 그러한 기회를 가지게 될 것이다.

  

  4. 두 자료집(corpus)

 

  지금까지, 변형 규칙이 통합되고 추상적인, 모든 언어나 학습 레벨을 포함하는 이상적 자료집에 적용되는 것을 보았다. 난 이 이상주의적 관점을 반대하며, 언어의 두가지 수준, 언어 학습의 두 단계, 두 자료군들의 고려를 제의한다. 전자는 평범한 이상적 인간(homme ideal moyen)의 수준, 즉 12-15세 아동에 해당하는 수준; 후자는 앞서 암시했던 이상적 교양을 갖춘 사람(personnage cultive ideal)의 수준일 것이다. 왜 두 자료군과 두 수준을 제시하는걸까?

 

  나의 목적은 언어 레벨에 대한 연구를 하는데 있지 않으며, 한 언어 레벨 정의의 확정된 결론에 도달하고자 하는 것도 아니다. 내가 관심을 가지는 것은, 기술 방법(techniques)을 통합하며, 그러나 또한 그 학습과 사용 레벨에 따라 변형과 일반화 규칙들을 분류하는 언어적 기술(description)의 이해가 가능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다른 용어로 말하면, 나는 비교적 젊은 세대에서 만들어지는 언어 체계의 상대적으로 완전한 통합이 존재하며, 인생에서 꽤 나중에 취득된 규칙은 (이전의) 기본적인 1차 규칙을 꽤 수정하지 않고, 이 규칙 위에 부가될 뿐이라는 것을 가정한다. 또한 그 기능이, 어떤 상황에서는 다른 몇몇 규칙의 적용을 무효화시키며, 그것들을 대체하는 규칙들도 있는데, 후자를 대체 규칙(regles substitatives)이라 부른다.

 

  그래서, 엄밀히 말하자면, 단 하나의 통합된 언어 레벨이 있다. 다른 레벨들은 이미 정립된 체계에 추가될 뿐이며, 결국 일반 레벨(niveau moyen)과는 대조적으로, 우리가 지향하는 학식있는 (교양있는)레벨(niveau cultive)은 첫번째 심리적 통합의 기본 1차 규칙(regles primaires)에 첨가된 이차적이며, 교정적, 대체적 규칙들(regles secondaire correctives et substutives)의 최대 이상적 총체를 구성할 뿐이다. 언어는, 마치 단 하나의 최소 발화(enonce)의 처리 방법을 위해 다양한 타입의 여러 규칙들이 취해질 수 있는, 겹겹의 여러 층(couches superposees)가 존재하는 것처럼 기능한다 : 사실(fait)에 이용된 규칙의 선택은 이 규칙이 쓰일 때 사용자가 처한 사회-문화적 상황에 따른다. 문법은, 직접적 환경에 의해 강요되고(또는 이 환경에 대해 강요하는) 사회적 색깔에 따른, (언어) 실행(pratique)에서 분류된 다른 (사회적) 색표의 모음과 같다. 가끔 어떤 색표는 한 인간 생애에서 그 색깔을 잃기도 하지만, 이 현상은 개별적 변화에서는 당연한 것이다.

 

  그래서, 언어 습득에서 심리적으로 전자(anterieures) 규칙들과 또 심리적으로 후자(posterieures) 규칙들을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채택된 모델(le model degage)은, 아마도 또 실험을 통하지 않고서도, 불어 사용자에게서 경험적으로 관찰되는 실체 모델(le model reel)에 더욱 가까울 것이다.

 

    일반적 형식에서 유사할지라도, 그런 문법은 <<교양있는(cultive)>> 문법보다 동시에 더욱 광범위하고도 간결한 것이에 틀림없다 ; 그러나, 문법이 더욱 추상적이고, 축소되었다는(집약되었다는) 사실을 통해 더욱 만족스러운 문법이라고 하는 것은 단지 정신적으로만 그러할 뿐이다.  내가 의미하는 바는, 하나의 문법은 또한 검증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모든 언어학적 가정은 처리 방식(methode)에 대한 것 만큼이나 문법의 진실성(veracite)에 대해서도 이루어져야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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