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어 발달사


 프랑스 역사 연대표

 

  BC500:켈트게 갈리아인 갈리아 지방에 정주 → BC58:케사르의 갈리아 정복(-BC51) → AD481:클로비스 1세 베로빙거 왕조 → 751:페팽 즉위 카롤링가 왕조 → 800:샤르마느 대제(768-814) 유럽통일 → 813:Tours종교회의 → 842:스트라스부르 서약(Louis-Charles) → 843:베르덩 조약 프랑크 왕국이 3국 분열 → 888:외드 즉위(-898) 로베르 왕조 → 987:카페 즉위(-996) 카페 왕조 → 1066:Guillaume(노르망디인)의 영국왕위 계승 → 1095:클레르몽 종교회의(십자군 결성) → 1096:제 1차 십자군(-99) → 1147:제 2차 십자군(-49) → 1189:제 3차 십자군(-92) →1226:필립 4세, 교황과 분쟁 → 1309:교황의 바빌론 유수(-77) 필립 4세 교황을 굴복시킴 → 1328:필립 6세 즉위 발르와 왕조 → 1337:100년 전재 시작(-1453) → 1362:에드워드 3세 불어 사용 금지령 → 1494:이탈리아 전쟁 개시(-1559) → 1498:루이 12세 즉위(발르와 오를레앙 왕조) → 1515:프랑스와 1세 즉위 → 1562:종교전쟁(위그노 전쟁) 개시 → 1589:앙리 4세 즉위(-1610) 부르봉 왕조 → 1589:낭트칙령, 종교전쟁 끝남 → 1610:앙리 4세 암살, 루이 13세 즉위(-43), 마리 드 메디시스 섭정 → 1635:루이 13세 30년전쟁에 개입 → 1643:루이 14세 즉위(-1715), 섭정 시작, 재상에 마자랭 등용 → 1648:프롱드의 난(-53), 베스트팔렌 조약(30년 전쟁 종료) → 1661:루이 14세 친정, 마자랭 사망 → 1672:네델란드 침략 전쟁(-78) → 1685:낭트 칙령 폐기, 위그노 망명 → 1715:루이 15세 즉이(-74) 오를레앙공 필립 섭정 → 1756:7년전쟁(-63), 파리 조약, 식민지 전쟁(카나다,인도)에서 영국에 패함 → 1774:루이 16세 즉이(-92) → 1789:(5월 5일) 3부회 소집, (6월 17일) 국민의회, (6월 20일) 테니스코트의 서약, (7월 14일) 바스티유 습격, (8월 4일) 봉건적 신분제, 영주제 폐지, (8월 26일) 인권 선언, (10월 5-6일) 국왕 파리로 연행, (12월) 아시니아 지폐 발행 → 1790:행정구역 개혁 → 1793:(1.21)국왕 처형, (6월)자코뱅 독재, (9월) 공포정치(-94) → 1794:(7.27)테르미도르의 9일 쿠데타 → 1796:나폴레옹 이탈리아 원정(-99) → 1799:(11.9)브뤼메르 18일의 쿠데타, 나폴레옹의 집정정부(-1804) → 1814:나폴레옹 엘바섬에 유배 → 1815:(3월) 나폴레옹, 백일천하, (6월)워털루의 싸움, (7월)제 2 왕정복고(-30) → 1830:7월 혁명, 루이 필립 즉위(-48) → 1848:2월 혁명, 제 2 공화정 (-52) → 1852:나폴레옹 3세 즉위 제 2제정(-70) → 1870:제 3 공화정(-1940) → 1914:제 1차 세계대전 시작(-18) → 1919:(1월) 파리 평화외의, (6월) 베르사유 조약 → 1939:(9월)제 2차 세계대전(-45) → 1945:(5월)독일군 항복, (11월) 드골 내각 성립 → 1946:(10월)제 4공화정(-56), 제네바 화의 → 1954:망데스 프랑스 내각, 알제리 전쟁 시작(-62) → 1958:(5.13)알제리에서 반란이 일어남, (10월)제 5 공화정 성립, 드골 대통령에 취임 → 1962:에비앵 협정(알제리 독립) → 1968:5월 위기, 전국에서 총파업 → 1974:지스카르 데스탱 3대 대통령에 취임 → 1981:프랑스와 미테랑, 4대 대통령에 취임, 사회당 정부 출범  → 1995: 쟉크 시락 5대 대통령에 취임.

 

프랑스어 발달사

 

1. 라틴 俗語期

  프랑스어는 인도-유럽어의 한 줄기인 라틴어에서 분화되어 나온 로망어의 한가지이다. 현재의 프랑스는 옛날에 골(Gaule,갈리아)이라고 불리던 지역으로, 이 곳에 살던 골족은 역시 인도-유럽어의 일종인 켈트 어족에 속하는 골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그러나 BC 3세기부터 시작된 로마 제국의 갈리아 점령을 계기로 갈리아는 차차 로마화하여 갈리아인도 로마인의 언어인 라틴어를 쓰게되고, 마침내 5세기경 게르만 민족이 이 지역을 무력으로 침공하게 될 때까지는 자기들의 본래 언어인 골어를 완전히 잊어버리고 만다.

  골어가 불어에 남긴 단어 - Paris< Parisiis, Tours< Turonis, cheval< caballus, chemise< camisia, 20진법의 흔적(quatre-vingts)

 

2. 갈로 로망어期(Gallo-roman)

  로마인의 뒤를 이어 갈리아를 침공한 이들 게르만족은 로마인의 경우와는 달리 피정복자의 문화와 종교(그리스도교)와 언어를 포섭하였다. 그러나, 갈리아에서 프라크족으로 대표되던 이들 게르만족의 언어는 이 당시에 골인이 쓰고 있던, 후기 라틴어의 구어체에서 형성된 라틴 속어와 그 구조가 크게 달라 동화가 어렵게 되자, 이것이 당시의 언어(5-9세기)에 급격한 변화를 가져오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9세기 이후 갈리아에서 쓰이던 언어 (로망어)는 벌써 그 전신인 라틴어와 엄청나게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정관서, 종교계, 학계에서는 여전히 라틴어만을 사용하고 있어서 대다수 일반 대중들의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813년 Tours에서 열린 카톨릭 공의회가 이미 신도들도 이해하지 못하게 된 라틴어롤 설교할 것이 아니라 앞으로는 대중의 언어인 로망어로 설교해야 한다고 결정한 일이라든지, 857년에 국왕 샤를르(Charles) 왕명으로 공포한 법령집을 대중들이 이해할 수 있는 로망어로 번역할 것을 주교들에게 명령한 사실들이 이 무렵의 사정을 잘 설명해 주고 있다. 또 라이혜나우(Reichenau)의 수도원에는 이른바 라이혜나우의 주해서(Gloses de Reichenau)가 보존되어 왔는데, 이것은 8세기 말 수백 단어의 고전 라틴어에 대하여 속어로 번역해 놓은 것이다.

  게르만어가 불어에 남긴 어휘 - Louis, guerre<werra, jardin<gardin.

 

3. 古代 佛語期

  이와 같이 하여 프랑스어가 기록으로 남게된 최고의 문서가 842년의 <스트라스부르의 서약>이다. 이는 일종의 군사조약 문서로서 라인강 동부를 통치하던 루이(Louis)왕과 프랑스의 샤를르(Charles)왕이 상호 협조를 맹약하는 내용이다. 그 뒤로도 두세 가지의 단편적인 문서가 남아서 전해지지만, 1040년경에 씌어진 듯한 <성알렉시스전 La vie de Saint-Alexis>이 완본으로 전해지는 최고의 문헌이다. 또한 11세기 말엽에는 무훈시의 걸작인 <롤랑의 노래 La Chanson de Roland>가 만들어졌다. 12세기에는 시인 크레띠앵 드 트루와(Chrétien de Troyes)가 나타나고, 13세기에는 갖가지 장르의 문예작품이 오일어의 여러 방언으로 씌어져 중세에 있어서의 고전기를 형성하였다. 이렇듯 최고의 문헌이 나타난 때로부터 13세기 말까지의 프랑스어를 고대프랑스어라고 일컫는다. 고대 프랑스어는 굴절에 의한 어형변화가 비교적 풍부했기 때문에 명사에는 단수형과 복수형 이외에도 주격과 목적격의 변화가 있고 (예:주격,단수/복수; murs/mur, 목적격,단수/복수; mur /murs), 동사는 가끔 그 어간이 액센트의 유무에 따라 모음교체를 나타냈다(예:동사 amer - aim, aimes, aime, amons, amez, aiment). 고대 프랑스어가 쓰이던 시기에는 오일어의 방언들 중에서 이렇다고 내세울 만한 중심어는 아직 뚜렷하게 형성되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이미 파리를 중심으로 하는 지역의 프랑시앵(francien) 방언이 언어적으로는 지방색이 희박한 데다가 카페(Capet) 왕조의 영지에서 통용되는 언어였기 때문에 12세기 후반부터는 점차 세력을 얻기 시작하였다. 또한, 이 시대는 노르망디공에 의한 영국정복이있었던 시기이기도 하다. 그는 1066년 프랑스의 군대를 이끌고 해협을 건너 영국의 왕위에 올랐다. 이후 프랑스의 노르망디 방언은 1362년 에드워드 3세가 불어 금지령을 내리기 전 까지 영국에서 300년간 쓰이게 되는데, 그 흔적이 오늘날의 영어에서도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다.(예: 살아있는 것 - cow, sheep, 죽은 것 - beef, mutton < 불어- boeuf, mouton>)

  고대 불어의 정서법 - 고대 불어에서는 정서법이 아직 확정되어 있지 않았다. 개음 [?], [ε]와 폐음 [o], [e]의 개구도의 차이를 표기하는 문자는 동일한 o와 e였다. 말하자면 불어는 출발부터 발음과 서기법 사이의 불일치를 안고 있었다. f의 유성음 상관은 v가 아닌 u로 전사되었다. u는 모음 가치와 자음 가치를 지닐 떄도 있었다. 또 u → v, ts → z, us → x 등의 축약 경향과 i → y과 같은 대치 형상이 나타난다.

  고대 불어의 발음 - 고대 불어의 초기에는 이중 모음이 발달한다. 자유강음모음, 즉 폐음절을 이루는 두 개의 자음 예컨대 ll, rr, st, ct, rt따위가 뒤에 오지 않는 모음은 연장되고 분열하여 이중 모음이 된다(seta: seide- seie- soie). 7세기 이후로 l은 자음 앞에서 u로 모음화하여 또한 많은 이중 모음을 만들었다. 예컨대 valoir의 현재 변화형에서 어근 val-은 3인칭 단수의 끝의 자음 앞에서는 il vaut처럼 vau-라는 형태가 되고 1인칭, 2인칭 복수에서는 nous valons, vous valez처럼 변하지 않는다. 명사나 형용사의 경우도 같아서 cheval에는 chevaus(al+s)가, loial에는 loiaus가 대응한다. 10세기 이후로 복잡한 음, 딱딱한 음은 축약되어 불어의 음성 구조는 경쾌하고 단순하게 된다. 따라서 이중 모음, 삼중 모음도 점차 축약된다. 11세기에는 [ai]가 [ε]로 축약된다. 단모음 o는 이중 모음 uo가 되고 이어서 ue가 되었다가 12세기에서 13세기까지 uœ로 발음되었고, 다시 u를 배제해 버리고 œ로 발음되기에 이르렀다. 또 centum의 c자는 13세기경에 현대의 발음 cent[s?]의 [s]가 되었다. s는 자음 앞에서 오랫동안 발음되었는데 노르망인의 영국 정복 이전에 유성 자음 앞에서는 소리가 나지 않게 되어 asne는 âne로 발음된다. 11세기경부터 c, ch, t, p앞에서도 독일어 발음 ich의 ch에 유사한 마찰음으로 변하더니 이윽고 발음되지 않게 되었다. meschant, chastel.

  고대 불어의 통사법 - 라틴어는 굴절어이기 때문에 명격, 호격, 속격, 여격, 대격, 탈격의 격을 가지고 있었는데, 오랜 진화 과정을 통해서 점차 격변화가 없어져서 두 개의 격으로 압축되어 갔고 라틴 속어의 이러한 문법 구조가 프랑크 말의 영향을 받아 분석적인 경향을 발전시키면서 비교적 안정된 균형을 유지하면서 진화해 나갔다. 어미의 분야에서는 규칙화하려는 시도가 계속되어 제 2 동사 활용에서는 직설법 현재 1인칭 단수는 예컨태 chant(<라틴어 canto(= je chante))과 같은 형태였으나 entre(= j'entre)와 같이 e가 존재하고 있던 동사의 본을 따라서 13세기부터 어미에 e를 붙이게 되었다. 접속법에서는 라틴어의 음 a에서 나온 e를 가진 다른 동사 활용형의 접속법, 예컨대 finisse, responde등을 본따서 음성 변화형 chant(= je chante), chanz(= chants = tu chantes), chant(= il chante)가 연장되어 chante, chantes, chante로의 변형을 준비하게 되었다. 여러가지 시상 aspect를 표현하기 위한 조동사가 만들어지면서 불어의 분석적인 경향은 더욱 뚜렷이 나타났다. 접속법은 간접의문과 현실적 가정도 표현하는 것이 본래의 용법이었으나, 이 두 가지를 직설법이 앗아감으로써 지반을 잃게 되었고, 또 한편으로 새로 만들어진 서법인 조건법은 당초에 과거에서의 미래를 나타내는 것이었으나 곧 불어뿐 아니라 모든 로망어에서 의혹과 조건을 나타내게 되어 조건법이라는 명칭을 얻게되고 또한 접속법의 영역을 잠식해 들어갔다. 고대 불어가 라틴어에서 계승한 것으로서, 비현실적 가정의 종속절이 si로 시작되어 접속법 반과거가 뒤따르고 주절, 즉 그 귀결절에서는 같은 시칭이 반복되는 순수한 접속법 구문이 있었으니 Si posset, faceret "나는 할 수 있다면 할 것이다"(posset는 possum(je=peux)의 접속법 반과거 3인칭 단수, faceret는 facio(=je fais)의 접속법 반과거 3인칭 단수)의 라틴어 구문은 고대 불어에 si poüst, fe°st(poüst> peüst>pût; feist> fist> fît)라는 접속법 구문을 남겼는데 한편 비현실적 가정에서의 전제절, 즉 종속절의 직설법 반과거와 그 귀결절에서의 조건법이라는 불어의 독특한 복합적인 유형이 13세기 이후에 생겨나서 후에까지 이 두 형식의 혼합을 만들면서 존속했다.

  관사의 사용도 점차 확대된다. Chanson de Roland 시대만 해도 정관사는 apelez le Franceis."그 프랑스 사람을 부르시오", ovrit les uels."그는 그 눈을 떴다" 처럼 한정해 주는 편이 나은 구상명사 앞이나, il tend son gant le destre. "그는 그의 장갑 오른쪽을 내민다"와 같이 한정하는 형용사 앞, 한정 형용사를 동반하는 실사 앞에서 쓰인다. 13세기경에는 관사가 부분사 속에 침투해서 불어와 프로방스어를 구분하고 독특한 용법으로 발달하니 boire d'eau보다 boire de l'eau는 더욱 명확하게 한정되게 된다.

  고대 불어의 어휘 - 고대 불어는 사물을 명확하고 다양스럽게 묘사할 수 있고 관념을 용이하게 표현할 수 있는 풍부한 어휘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 중의 많은 부분은 라틴어에서 쓰인 것과 같거나 또는 비슷한 의미를 그대로 지닌 채 라틴어에서 로망어로 전해지고 다시 고대 불어에서 이어받은 것이다. 라틴어 bovem(소)에서 buef(=beouf)가 되고  amicitatem(우정)에서 amistié(=amitié)가 되었다. 십자군을 통한 아랍어 jupe, goudron등이 직접들어오고 이탈리아 사람을 통해서 coton, magsin등 상업용어가 들어오고 orange따위는 스페인어를 통해 도입되었다.

 

4. 中期 佛語期

  중기 프랑스어는 14세기 초부터 16세기 말까지 통용된 프랑스어를 가리킨다. 14-15세기는 100년 전쟁으로 말미암아 사회혼란이 극도에 달한 시대로서, 프랑스어 역시 이와 같은 역사적 정세를 반영하여 동요할 수밖에 없었다. 고대 프랑스어에서 볼 수 있는 명사변화의 2격조직이 무너져 단수, 복수가 각각 하나의 어형을 가지게 되고, 동사의 대부분은 어간이 통일되면서 어미도 균제화되는 경향을 나타냈다(예: 동사 aimer - aime, aimes aime, aimons, aimez, aiment). 동시에 주격과 목적격의 구별이 없어짐에 따라 주어와 목적어를 구별할 필요가 생겼으므로 주어-동사-목적어의 어순이 고정되고, 동사 어미의 균제화 현상 때문에 인칭대명사를 동사 앞에 두어 인칭의 구별을 나타내는 등 문장의 구조가 정착되었다. 봉건제도에서 왕정으로 이행되는 추세는 여러 방언의 몰락과 프랑시앵어의 세력 확대를 촉진시켰으며, 1400년경의 연대기 작가 프루와싸르(Froissart)는 방언으로 저술을 한 마지막 인물이 되었다. 100년전쟁이 끝난 뒤, 1494년 샤를르 8세의 이탈리아 원정으로 프랑스는 르네상스의 사조를 접하게 된다. 16세기는 프랑스어가 중세와 결별하고 근대로 향하는 전환기가 되었다. 고전과의 새로운 접촉은 프랑스인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언어에 대한 강렬한 자부를 일깨우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프랑스와(François) 1세는 <빌레-코트레의 칙령 Villers-Cotterets>으로 법정에서 프랑스어를 사용하도록 명하였고, 모든 학술은 으례 라틴어를 사용해야만 된다는 종래의 생각에서 벗어나 종교, 의학분야까지도 프랑스어로 저술된 서적이 간행되기 시작하였다. 문단에서는 1549년 시인 뒤 벨레가 <프랑스어의 옹호와 선양 Defence et Illustration de la langue française>을 발표, 프랑스어가 심오한 시적 감정과 사상을 표현하는데 가장 알맞은 언어임을 선언하였고, 그 밖의 많은 문학인들도 프랑스어를 연구하고 그것을 풍요한 언어로 가꾸어 나가고자 힘썼다. 그러나 15세기 초엽에 나타난 거장 라블레의 언어 구사가 상징하듯이 갑자기 풍성해진 프랑스어는 한편으로 혼란한 면을 드러낸 것도 부인할 수는 없다. 이를 정돈하는 작업은 루이 14세의 강력한 왕권이 확립되는 17세기로 위임되었다.

  중기 불어기의 발음 - 모음 앞에서 묵음 e의 배제 현상에 의하여  모음 중복의 축약이 완성된다. 자음 뒤에서 e가 소실(16세기) 되고, août에서 [a]가 발음되지 않게 된다. 또 고대 불어의 'l'이 모음화 되고, 이중 모음 축약 현상이 나타난다. 예를들면 cheveu, mou에서 [eu], [ou]가 [œ], [u]로 바뀐다. 또 [au]가 [o]로 축약된다.(beau[bεau]→ [beau]→ [beo]→ [bo]) 한편 두 개의 모음 [?]와 [o]가 새롭게 나타난다. 즉 12-13세기의 paste에서 처럼 자음 앞에서 s가 탈락할 때 a가 길어져서 [?]가 생기고, chose에서 어미나 모음 사이의 s 앞에서 [?]가 [o]로 변화된다. 또 어미 자음의 탈락 현상이 나타난다. r는 14세기에 이미 탈락되고 16세기에는 모든 어미 자음들이 탈락된다. 유음 h도 소멸되고 , 축약이 너무 급진되어 반발 현상도 나타나게 된다.(예를 들면: oi[we]가 [e]나 [ε]로 축약되었다가 voire[vε:r]<유리> - [we]로 다시 환원된다.)

  중기 불어의 정서법 - 앞에서 알아본 것처럼 발음이 이렇듯 독자적으로 진화해 나가는 데 반해서 정서법은 이미 그것을 기록하지 못할뿐더러 오히려 쓸데 없는 글자를 덧붙임으로써 잘못변화되기도 했다. 14세기에서 16세기까지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작용하여 정서법은 점점 혼란 속에 빠져들어갔는데, 글쓴 사람들이 능률을 위하여 생략법을 채택했던 것을 이 시기에 와서는 이미 그 이ㅠ를 이해하지 못하게 되면서 그런 혼란이 생긴 것이다. 예컨대 x는 위에서도 말한 것과 같이 어미의 us의 생략형이므로 chevax(말)은 chevaus[-aus]라고 읽혀야 옳았을 것이지만, 13세기경부터 chevaux로 쓰여지기 시작하면서 u뒤의 x는 복수로 일반화되게 되었다. 또한 글쓰는 사람들의 현학적인 취미 때문에 무턱대고 어원적 문자가 도입되어 혼란이 가중되었다. 예컨대 라틴어 nidum, pedem과 연관시켜 ni, pié를 nid, pied 등으로 썼다. 그리고 동사의 모음이 통일 되고 철자법도 개선된다.(악상 떼규, 그라브, 트레마, 아포스트로프, 띠레)

  중기 불어의 통사법 - 불어는 이 시기에 급속하게 근대적인 모습으로 변해 간다. 2격 격변화의 마지막 흔적이 백년전쟁과 더불어 완전히 소멸해 버린다. 따라서 문장 속에서 명사가 수행하는 주어(주격), 보어(피제격)의 기능은 어순에 의해서 표시되고, 명사는 고대 불어의 피제격의 형태와 똑같이 되어 단수에서는 어미에 s가 없고 복수에는 s가 붙게 되었다. 굴절은 형용사에서도 소멸해 버렸다. 그리고 -e로 끝나는 여성형이 15세기 이후에 일반화된다. 정관사는 주격의 형태를 버리고 홀가분해져서 14세기에는 정관사의 용법이 명사가 일반적인 의미로 쓰일 경우에까지 적용되게 된다.

  중기 불어의 어휘 - P.Guiraud의 말에 따르면 14세기, 16세기는 불어 어휘 창조의 위대한 시기이며 중기 불어가 지금의 불어 사전의 반 이상의 단어를 제공해 주고 있다고 한다. 특히 차용어에 의해서 어휘는 풍부해진다. 16세기 초에 나타난 번역가들에 의해서 민중어에 동일한 낱말이 없는 다수의 라틴어 용어, 특히 추상적인 개념을 나타내는 용어가 라틴어에서 불어로 도입된다. 이 현상은 문예 부흥기에 접어 들면서 더욱 심해져서, 때로는 라틴어를 통해서 희랍어에서까지 차용어가 들어오기도 했다. 그러나 이 시기에 가장 많은 차용어를 제공한 것은 이탈리아어였다. banque, arcade 등. 관사 따위 소사가 빈번히 사용되자, 관사와 단어 사이에 연독을 하게되고, 그것이 단숨에 발음되는 음의 그룹을 형성하기 때문에 단어 사이의 끊어지는 자리를 잘못 알게 만들어 때때로 이접현상을 일으켰다. 그래서 관사인 l'를 다음 명사의 첫 음으로 오인하여 l'uette는 la luette(목젖)로 변형되었다. 또 이접현상을 일으켜서 단어의 첫머리 음 a는 agriotte(신 버찌)에서 여성 정관사의 a로 오인되어 la griotte로 변해 버렸다.

 

5. 近代 - 現代 佛語期

  불어 순화 작업은 시인 말레르브(Malherbe)에 의해 착수되고, 이어서 1635년 재상 리슐리외가 창설한 Académie française로 계승된다. 아카데미에 소속한 문법학자 보쥐라(Vaugelas)는 궁정어를 중심으로 한 불어의 관행을 면밀히 관찰한 끝에 <Remarques sur la langue française>를 저술한다. Port Royal문법은 언어의 논리적 성격이라는 각도에서 인간의 사고에 입각한 문법을 해명하고자 하였다.(Grammaire générale et raisonnée)

  17세기를 통하여 프랑스어의 어휘는 간소화의 길을 걷게 됨과 아울러 명석성이 부여되고 문법은 논리적인 체계를 지니게 됨으로써 근대 불어의 기본적 성격이 확립되었다. 이윽고 18세기에는 백과전서파의 학자들이 나타나고 과학이 발달하면서 전문술어들이 부쩍 늘어나지만 불어의 명석한 언어로서의 성격은 변함없이 유지되었다. 또 1789년 대혁명이 일어남에 따라 언어적으로 지방의 고립 탈피와 더불어 방언이 없어지게 되었다. 혁명기를 지나 불어는 과학과 기술의 발달로 더욱 새로운 용어가 많이 만들어지고 특히 영어로 부터 많은 어휘들이 차용되었다.




[페이지 윗쪽으로]


myungwan@chonbu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