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2. 프랑스의 연극
1) 중세 연극
서양 연극의 기원은 고대 희랍극에서 찾지만, 프랑스 연극사는 중세의 종교극에서 시작한다. 성탄절이나 부활절 등 기독교의 기념일에 예수의 탄생과 부활, 수난과 같은 성서의 역사와 기적등을 소재로 성직자들이 배우가 되어 일반 민중을 관객으로 교회안에서 공연하는 것이 바로 종교극의 시작이다.
성서의 인물이 등장하는 중세의 종교극은 성모 마리아를 주제로 한 기적극 Miracles과 신약이나 구약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을 다룬 신비극 혹은 성사극 Mystères로 구별된다. 40편의 기적극을 묶은 『성모의 기적 Miracles de Notre-Dame par personnages』, 쟝 보댈 Jean Bodel의 『성 니콜라 극 Jeu de Saint Nicolas』(1200년경), 뤼뜨뵈프 Rutebeuf의 『떼오필의 기적 Miracle de Théophile』(1260년경)등이 대표적인 기적극이다. 창세기이래 인류의 역사와 예수의 수난을 다룬 성사극 가운데 아르눌 그레방(Arnoul Gréban)의 『수난극 Mystère de la Passion』이 유명하다. 교회에서 시작된 종교극의 공연을 전담하는 수난극 조합(Confrérie de la Passion)이 13세기 이후 각 지역별로 조직되었는데 이 조합은 16세기까지 활동한다.
중세의 종교극에는 르네상스와 17세기 연극에서 중시한 장르 구분이 아직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다음 세대의 연극에서 종교적인 주제가 주로 비극 장르에서 발견되는 까닭에 종교극의 전통은 비극으로 이어졌다고 볼 수 있다.
중세 연극에서 희극의 원조가 될 만한 징후는 세속극(théâtre profane)에서 발견된다. 세속극은 종교극과 상대되는 개념이지만 그 기원은 여전히 종교극에서 출발한다. 교화적인 목적을 가진 성사극이 공연되는 막간에 악마나 도둑과 같은 우스꽝스러운 인물이 등장하여 저속하고 풍자적인 농담을 던지며 관객에게 웃음을 유발하던 것이 세속극의 시작이다. 그러나 세속극에 등장하는 인물이 본질적으로 종교적 인물이 아니라는 점에서 종교극과 분명한 차이가 있다.
세속극의 장르에는 우의적 인물이 등장하여 개인적 윤리를 언급하는 도덕극 moralité과 정치적 풍자와 사회성이 강한 풍자극 sotie이 있다. 그러나 중세의 세속극 가운데 가장 서민적이고 오랜 생명력을 유지한 장르는 소극(farce)이다. 엉큼하고 부패한 성직자와 남편을 속이는 영악한 부인네, 얼간이 남편과같은 전형적 인물이 소극에 주로 등장한다. 작자 미상의 『빠뜰랭 변호사의 소극 Farce de Maître Pierre Pathelin』(1460-1465)은 중세의 대표적인 소극으로 전 유럽에 걸쳐 소개되었다.
2) 르네상스 시대 연극
세속극과 수난극 등 중세의 연극 장르는 1540년대까지 그대로 유지된다. 그러나 1548년 파리의 고등 법원이 수난극 조합에 의한 성사극의 공연을 금지한다. 실제로 1550년 이후 발표된 성사극은 전해지는 것이 없어 종교극이 더 이상 공연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이에 비하여 세속적인 희극은 계속 공연되는데 세기말에도 소극이 활발하게 공연되었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16세기 프랑스 연극의 진정한 출발은 종교극과 세속극 대신 이태리 르네상스가 복원한 희랍과 로마의 고대극을 수용하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당시 문화적으로 선진국인 이태리의 문물을 받아들이고 연구한 인문주의자들은 고대 연극의 수용에 크게 기여하였다. 예를 들어 바이프(Lazare de Baif)는 소포클레스(Sophocle)의 『엘렉트라 Electre』를 각색하였고, 롱싸르(Ronsard)는 아리스토파네스(Aristophane)의 『플루터스 Plutus』를 번역하였다.
* 비극(la tragédie): 비극은 16세기 후반 프랑스 연극을 대표하는 장르로, 로마의 작가 세네카(Sénèque)의 비극에서 주로 영감을 얻었다.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 있는 인물을 등장시켜 불확실한 인간의 운명을 보여주는 비극의 사건은 긴장감속에 진행되어 파국으로 끝난다. 프랑스어로 쓰여진 최초의 비극은 베즈(Théodore de Bèze)가 발표한 『희생하는 아브라함 Abraham sacrifiant』(1550)이다. 죠댈 (Etienne Jodelle)의 『포로가 된 클레오파트라 Cléopâtre captive』와 그레뱅(Jacques Grévin)의 『시저의 죽음 La Mort de César』은 고대극에서 그 주제를 찾은 작품이다.
모두 7편의 비극을 발표하여 16세기에 가장 많은 비극을 발표한 가르니에 Robert Garnier의 대표작은 『유대의 여인들 Les Juives』이다.
* 희극(la comédie): 희극은 이태리 르네상스 희극이 유입되기 전까지 프랑스 희극을 대표하는 장르이다. 비극 작가로 이미 소개된 죠댈은 최초의 희극 『외젠느 Eugène』(1552)를 발표하는데 이 작품은 심리적 요소에도 불구하고 소극의 색채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 그밖에 그레뱅, 따이으(Jean de la Taille), 뛰르네브(Odet de Turnèbe)등의 작가들이 르네상스 이태리 희극을 모방한 작품을 발표하였다.
프랑스 인문주의 희극을 대표하는 작가는 이태리 출신의 라리베(Pierre de Larivey)이다. 그가 발표한 9편의 희극은 모두 이태리 희극을 프랑스어로 각색한 것이다. 그러므로 작품의 소재와 등장 인물은 이태리 연극에서 대부분 모방되었다. 라리베가 각색한 이태리 희극은 사건의 전개가 복잡한 것이 특징인데 이것은 17세기와 18세기 프랑스 희극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
3) 17세기 연극
16세기 후반이래 프랑스를 내전으로 몰아넣은 종교 전쟁의 영향으로 연극 공연은 17세기 초까지 크게 위축되었다. 1630년을 전후하여 이같은 상황은 바뀌기 시작하는데 루이 13세때의 수상 리슐리외(Richelieu)가 자신의 정치적 역량을 바탕으로 연극을 보호하고 장려한 까닭이다.
* 바로크 연극(le théâtre baroque): 문학사가들에 의하여 오랫동안 전기 고전주의(le préclassicisme)로 지칭된 17세기 전반부의 문학이 바로크 미학으로 설명되면서 이 시기의 연극도 바로크 연극으로 불리우게 되었다. 자유로운 상상을 추구하는 바로크 연극은 삼일치의 규칙(trois unités)이나 진실임직함(vraisemblable), 적합성(bienséances) 등 고전주의 미학에서 중시되는 원칙에 충실하지 않으며 장르의 구분을 무시한다.
1630년대까지 파리의 연극계에는 희극과 비극의 요소가 혼재한 비희극 (la tragi-comédie)이 유행하였다. 사랑의 배반으로 인한 결투와 죽음 등 잔인한 장면이 자주 등장하는 비희극은 혼란스러운 시대 정서와 당시 관객의 취향을 반영한다. 비희극과 아울러 마술의 세계와 젊은이들의 목가적인 사랑을 주제로 한 전원극(la pastorale)도 바로크 연극에 포함된다.
수백 편의 비극과 비희극을 발표한 아르디(Alexandre Hardy)와 비극, 희극, 비희극을 가리지 않고 발표한 로트루(Jean Rotrou)는 바로크 연극을 대표하는 작가들이다. 코르네이유는 『연극적 환상 L'Illusion comique』이라는 바로크 연극의 걸작을 발표하였다.
* 비극: 작품안에 둘 이상의 플롯 설정을 금지하는 행동의 단일성(unité d'action), 작품이 일어나는 무대를 한 곳으로 제한하는 장소의 단일성(unité de lieu), 무대에서 일어나는 사건이 12시간 혹은 24시간 안에 완료되어야 하는 시간의 단일성(unité de temps)등이 비극의 삼일치의 규칙을 구성한다. 무대에서 일어나는 사건이 역사적 사실처럼 개별적이지 않고 관객의 상식에서 그럴 수도 있다고 여겨지는 진실임직함의 원칙과 당대 관객의 윤리적, 미학적 기준에 부합해야 하는 적합성의 원칙은 삼일치의 원칙과 함께 고전주의 미학의 핵심이다.
이처럼 제한적 요소가 많은 고전극의 미학을 준수하며 당대 관객들의 취향을 이끈 작가가 코르네이유와 라신느이다. 루이 13세 시대의 영웅적 세계관을 반영한 코르네이유의 비극은 비희극에 몰두했던 관객의 취향을 국가적 명분이 강조되는 역사 비극으로 고양시켰다. 고전극의 미학이 보다 철저하게 요구된 17세기 후반기에 활동한 라신느는 코르네이유의 비극과 상반되는 가치를 강조한다. 개인적 열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라신느의 주인공은 사회와 국가가 요구하는 명분을 외면하고 스스로 파멸한다. 합리적 이성에 대한 개인적 감성의 승리는 라신느 비극의 숙명성을 창조하는 동인이 된다.
* 희극: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에서 희극에 대한 비극의 우위를 기술한 이래, 희극은 일반인의 인식에 고상한 장르로 인식되지 않았다. 이같은 오랜 편견을 물리치고 프랑스의 고전 희극을 완성한 작가가 바로 몰리에르이다. 부르조아 가정에서 태어나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연극에 뛰어든 몰리에르는 희극을 비극에 필적하는 독자적 장르로 만드는 데에 그의 인생을 바친다.
몰리에르의 연극은 줄거리가 복잡한 구성 희극(comédie d'intrigues), 특정한 성격이 강조된 성격 희극(comédie de caractère), 그리고 당대 사회의 모습을 그린 풍속 희극(comédie de moeurs)등의 범주로 구분된다. 그러나 이 범주들은 서로 배타적인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수전노 L'Avare』같은 작품은 사건의 변화가 무쌍하면서도 지독한 구두쇠로 나오는 아르빠공의 성격을 충실하게 묘사하고 고리대금업자의 일면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몰리에르의 희극이 지금까지 공연되고 연구의 대상으로 남는 까닭은, 시대와 장소를 달리해도 이해될 수 있는 보편성(universalité)을 가지기 때문이다. 젊은 여인에 대한 늙은이의 사랑, 부르조아의 출세 욕구, 독실한 신앙, 자녀의 결혼에서 부와 지위를 중시하는 부모들의 결혼관 등 그가 다룬 여러 주제들은 현대의 어디서나 발견되는 보편적 현상이다.
* 17세기 파리의 극장: 17세기초까지 파리의 상설 극장은 두 개에 불과했다. 최초의 상설 극단인 부르고뉴 극단(Théâtre de l'Hôtel de Bourgogne)은 1518년 이래 파리에 상주하며 종교극과 도덕극, 소극 등을 독점하였는데 1548년 성사극의 공연이 금지되자 파리를 다녀가는 유랑 극단에게 극장을 대여하게 되었다. 1610년 경에는 궁정 소속의 배우들(les Comédiens du Roi)의 공연이 주로 이루어지고 이들은 나중에 대배우(les Grands Comédiens)라는 호칭을 갖게 된다.
테니스장을 개조하여 1634년에 설립된 마래 극단(Le Théâtre du Marais)은 기존의 부르고뉴 극단과 경쟁하며 연극의 수준을 한 단계 높이는데 기여하였고 재능있는 배우를 발굴하는 산실이 되었다.
1658년 파리에 정착한 몰리에르 극단은 쁘띠 부르봉(salle du Petit-Bourbon)에서 이태리 극단과 번갈아 공연하도록 허가를 받은 후, 1661년부터 팔래 루아얄(Palais Royal)에서 머무는 것이 확정되어 몰리에르가 죽을때까지 그곳에서 공연한다. 1673년 몰리에르의 사망으로 마래 극단과 몰리에르 극단이 통합하여 게네고 극단(Théâtre Guénégaud)이 된다. 게네고 극단은 부르고뉴 극단과 다시 통합하여 코메디 프랑세즈(Comédie- Française)가 된다(1680).
4) 18세기 연극
철학과 과학, 정치학, 사회학 등의 발전으로 18세기의 연극은 상대적으로 위축되었다. 게다가 17세기에 비견할만한 뛰어난 작가가 나오지 않았다. 젊은 시절 문예를 장려하였으나 말년에 연극을 멀리한 루이 14세의 서거 후, 섭정으로 집권한 오를레앙 공(Philippe d'Orleans)이 궁정에 쾌락과 자유의 분위기를 회복시킨 것은 연극 발전에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 비극: 18세기 연극 가운데 다른 어느 장르보다 쇠퇴한 것이 비극이다. 고전극의 엄격한 규칙을 지키는 비극은 작가들에게 창작의 자유를 제한하고 관객에게는 지나간 시대의 유행처럼 여겨졌다. 18세기 전반에 활동한 사상가이자 철학적 콩트(conte philosophique)의 작가 볼테르는 연극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비극 장르를 혁신하려는 의욕을 가졌으나 코르네이유나 라신느가 보여준 독창성과는 분명한 거리가 있었다.
* 희극: 18세기 전반부 희극은 전세기에 유행한 풍속 희극의 유산을 그대로 계승한다. 몰리에르의 사망이후 세기말 희극을 주도한 르냐르(Jean-François Regnard), 뒤프레니(Charles Dufresny), 당꾸르(Dancourt)등의 작가들은 주로 부르조아 계층을 작품의 소재로 삼았다. 쇠락한 궁정의 권력과 부패한 귀족사이에서 부의 축적과 신분 상승에 몰두하는 부르조아 계층의 야망과 사랑이 양세기 희극을 연결하는 주제가 되었다. 여기에 농부와 하인 계급과 같은 피지배층이 귀족과 부르조아에 대하여 갖는 불만과 비판 정신이 18세기 희극의 다른 흐름을 만들었다.
18세기 프랑스 희극을 대표하는 작가로 마리보와 보마르셰가 있다. 마리보의 연극은 금전 만능의 경박한 사회 풍조를 다루는데 그치지 않고 사랑의 미묘한 감정을 세밀하게 묘사하고 변장과 거짓말을 통하여 상대방의 사랑을 시험하는 과정을 사실적으로 그려낸다. 작가의 생존시 비평가들은 그의 작품을 빈정거리는 의도로 <<마리보다쥬 marivaudage>>라는 표현을 쓰기 시작하였는데, 이후 그것은 하나의 극작 방식을 지칭하는 보통 명사로 남게 되었다.
20세기에 들어 마리보 연극에 대한 새로운 조명과 인식이 있기 전까지 보마르셰는 18세기의 몰리에르로 평가되었다. 『세빌리아의 이발사 Le Barbier de Serville』는 그를 당대의 극작가로 부각시켰고, 6년간 공연이 금지되었던 『피가로의 결혼 Le Mariage de Figaro』은 그의 작가적 재능을 재확인시키며 18세기를 대표하는 희극의 하나가 되었다.
* 드라마(le drame): 18세기 연극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드라마라는 새로운 장르의 출현이다. 백과 사전의 편찬을 주도한 디드로가 이론적 체계를 제시한 드라마 혹은 부르조아극(le drame bourgeois)은 비극과 희극의 중간적 성격을 가지며 지금까지 우스꽝스럽고 희화의 대상이었던 부르조아 계층을 진지하고 감동적으로 다루기 시작하였다. 미학적인 참신성에도 불구하고 부르조아극은 기존의 장르를 능가하는 걸작을 만들지 못하는 한계를 가진다. 드라마는 대혁명을 거치며 노래가 들어간 멜로드라마(le mélodrame)로 발전한다.
5) 19세기 연극
19세기 연극은 디드로의 드라마 이론을 더욱 발전시키는 미학적 시도를 모색한다. 자아와 감성의 자유로운 표현을 중시하는 낭만주의 미학은 고전극에서 절대적으로 요구된 여러 형식과 제한을 거부하며 낭만주의 연극(le drame romantique)의 이론을 수립한다.
* 낭만주의 연극: 낭만주의 연극론에 대한 탐색은 작품이 나오기 전부터 시도되었다. 스탕달은 『라신느와 셰익스피어 Racine et Shakespeare』(1823)에서 셰익스피어를 낭만주의 연극의 선구자로 칭송하였다. 극작에 있어 제한적 규칙을 거부하고 자유로운 상상을 추구하는 점에서 낭만주의 연극은 바로크 연극과 공통점을 가진다. 빅토르 위고의 『크롬웰 서문 Préface de Cromwell』(1827)도 낭만주의 연극의 강령을 제시한다. 고전극에서 절대시되었던 삼일치의 규칙과 5막 구성을 거부한 위고는 연극이 보다 자유로운 공간과 표현 양식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에 따르면 연극에 등장하는 인간은 반드시 희극적이거나 비극적인 극단에 서지 않고 선과 악, 아름다움과 추함을 동시에 갖기에 상호 모순적일 수 있다. 위고의 연극론은 인간의 육체성과 정신성, 숭고한 측면과 그로테스크한 측면을 모두 보여주어야 한다는 점에서 비극적인 것과 희극적인 것의 공존 혹은 혼합을 지향한다. 이같은 이론은 그의 대표작인 『에르나니 Hernani』나 『뤼 블라스 Ruy Blas』에는 그대로 적용되지 않고 오히려 동시대 작가인 뒤마의 『헨리 8세와 그의 궁정 Henri Ⅷ et sa cour』같은 작품에서 충실하게 적용된다. 이밖에 위고의 『뤼크래쓰 보르지아 Lucrèce Borgia』, 뮈쎄의 『로렌자쵸 Lorenzaccio』, 뒤마의 『킨 Kean』등도 낭만주의 연극을 대표하는 작품이다.
* 사실주의 연극: 사실주의 연극은 낭만주의 연극처럼 어떤 미학적 강령아래 투쟁하는 전투적인 성격을 갖지 않는다. 고전극에서 근대극으로 전이되는 과정에 필요한 논쟁은 낭만주의 운동에서 충분히 이루어졌고 사실주의 연극도 낭만주의 연극과 함께 이미 근대극에 속하기 때문이다.
중세의 소극이래 풍속의 묘사는 프랑스 희극에서 빼놓을 수 없는 특징이다. 사회 계층가운데 일반 서민이나 부르조아 계층에 특히 관심을 둔 디드로의 드라마 이론도 넓은 의미에서 사실주의적 요소를 포함한다. 이같은 맥락에서 19세기 후반에 활동한 오지에(Emile Augier)의 작품을 <<진지한 희극 comédie sérieuse>>으로 부른다. 발자크 소설의 사실주의를 추종한 오지에의 연극은 부르조아 계층의 결혼이나 유산, 금전 등의 문제를 주로 다룬다. 대표작으로 『푸와리에씨의 사위 Le Gendre de Monsieur Poirier』가 있다.
풍속 희극의 전통은 19세기 후반 <<보드빌르 vaudeville>>라는 하나의 장르를 만들어낸다. 18세기 초 유행한 장터 연극(théâtre de la Foire)처럼 춤과 음악이 들어간 보드빌르는 가벼운 웃음을 유도하며 관객들의 사랑을 받았는데 대표적인 작가로 스크리브(Eugène Scribe), 라비슈(Labiche), 패도(Georges Feydeau)등이 있다.
6) 20세기 연극
20세기 전반에 활동한 페기, 클로델, 베르나노스, 모리악, 마르셀, 몽테를랑 등의 작가들은 당시 유행한 물질주의 풍조에 저항하며 인간 정신의 위대성을 불러 일으키는 작품을 발표하였다. 서정성이 강한 클로델의 연극은 관객으로 하여금 인간을 은총으로 이끄는 의식에 참여하게 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20세기 후반 프랑스 연극은 사르트르가 체계를 세운 실존 철학과 카뮈가 소설과 희곡에서 구현한 부조리(l'absurde)의 개념을 반영한다. 두 차례에 걸친 전쟁의 참상을 경험한 유럽의 정신 세계는 신의 섭리와 인간성의 본질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 양차대전 사이의 연극: 1, 2차 세계 대전 사이의 프랑스 연극은 전쟁의 종료에 대한 안도와, 또 다른 전쟁의 가능성에 대한 우려 등 극단적으로 다른 정서를 반영한다. 되찾은 평화 속에 현실을 즐기려는 욕구가 통속극인 불르바르 연극(théâtre de boulevard)에서 표출되었다면, 아누이(Jean Anouilh)와 지로두(Jean Giraudoux)의 연극은 고대의 신화에서 영감을 얻으며 비극의 부활을 시도한다.
19세기에 멜로 드라마나 판토마임, 통속극이 공연되던 극장이 대로를 뜻하는 불르바르에 있었기에 붙여진 이름인 불르바르 연극은, 20세기에 들어와 가벼운 웃음으로 부르조아 관객의 취향에 부합하였다. 불륜(adultère)이라는 단일한 주제로 수많은 작품을 발표한 기트리(Sacha Guitry)는 불르바르 연극을 대표하는 작가이다.
꼭또(Jean Cocteau)의 『오르페 Orphée』이래 많은 작가들이 고대 희랍의 신화에서 주제를 찾으며 고전극의 형식을 답습하는 신고전주의 풍조가 유행하였다. 연출가이자 배우인 쥬베(Louis Jouvet)와의 만남을 통해 극작에 뛰어든 지로두는 고대의 신화를 바탕으로 20세기의 정서를 반영하는 비극을 발표하였는데 그 가운데 『앙피트리용 38 Amphitryon 38』, 『트로이 전쟁은 일어나지 않으리 La Guerre de Troie n'aura pas lieu』, 『엘렉트라 Electra』등이 유명하다.
* 부조리 연극: 프랑스의 부조리 연극은 공교롭게도 외국 출신의 작가들이 주도하였다. 루마니아 출신의 이오네스코(Eugène Ionesco), 아일랜드 출신의 베케트(Samuel Beckett), 러시아인 아다모프(Adamov)가 그들이다. 프랑스어에 대하여 가지고 있던 일정한 거리가 그들로 하여금 인간 사이의 소통 불가능성(incommunicabilité)을 첨예하게 드러내는데 유리하게 작용한 것이다.
부조리 연극의 작가들이 흔히 다루는 주제는 늙어간다는 것(le vieillessement), 갇혀 있다는 것(l'enfermement), 공포(la peur)와 기다림(l'attente)이다. 베케트 연극의 인물들은 무대에서 아무런 할 일이 없다. 그들은 아무 것도 일어나지 않는 일상을 단절시켜줄 무엇을 헛되이 기다리며 의미 없는 대사와 몸짓을 주고받는다. 이오네스코의 연극에는 극적 언어가 대화를 이어주는 기능을 잃고 하나의 소리, 의성어의 조각으로 변질된다. 베케트와 이오네스코의 연극에는 전통적 연극에서 기본적으로 지켜졌던 사건의 인과 관계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무대에서 일어나는 사건은 논리적 귀결이 아닌 우연성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 연극의 지방 분산 정책(décentralisation): 20세기 연극의 특징 가운데 극장의 지방 분산화 정책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방화 정책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본격적으로 이루어졌으며, la Comédie de Saint-Etienne는 지방 연극의 활성화를 보여주는 예가 된다. 이밖에 빌라르(Jean Vilar)에 의하여 1947년부터 시작된 아비뇽 연극 축제(Festival d'Avignon)같은 하계 연극 행사가 다수 생기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