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문화2-4

2 -4. 프랑스의 미술

회화는 프랑스의 문화적 삶에서 문학만큼이나 중요한 비중을 차지해왔다. 화가들은 변함없이 새로운 형태의 회화를 위한 모색에 기꺼이 자신을 바쳤으며, 그것은 인상주의의 열풍이 회화를 새로운 시대의 모험에 가담시킬 때까지 결코 중단하지 않았다. 20세기에 들어선 이후로도 회화는 여전히 프랑스의 문화에서 가장 유력한 영향력을 행사해왔지만, 급변하는 국제적 상황은 프랑스의 회화에 새로운 적응력을 요구했다. 특히 대전 이후, 전에는 프랑스의 몫이었던 세계 미술의 인도자로서의 특권은 상당 부분 새로이 부상하는 미국으로 이양되었다. 따라서 지난 반 세기동안,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프랑스의 회화는 현대 미술의 첨예한 현장으로부터 한 발 물러선 것처럼 보였지만, 오히려 내면적 차분함 속에서 오래된 전통의 유산을 바탕으로 다시금 도래할 새로운 시기를 위해 구 대륙의 문화적 비젼을 가다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1) 프랑스 회화의 기원

프랑스 회화의 기원은 목가적이고도 친숙한 삶의 장면들을 담은 중세의 제단장식 그림까지 거슬러 올라갈 것이다. 이후 15세기경 플랑드르와 이탈리아의 영향 아래서 진정으로 프랑스적인 화풍이 잉태되는데, 니꼴라 프로망(Nicolas Froment)과 장 푸께(Jean Fouquet)가 그 역할을 충실하게 담당했었다.

프랑스에서 회화가 완전히 정착한 것을 보기 위해서는 르네상스이후까지 기다려야만 했다. 그것은 특히 새로운 형태의 공공 후원으로 활성화된 초상화 장르에서 먼저 시작되었는데, 당시의 걸출한 작가로는 필립쁘 드 샹뺀뉴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17세기로 접어들면서 르 냉(Le Nain)이나 끌로드 로랭(Clode Lorrain)같은 사실주의 묘사에 뛰어난 작가들이 등장하고, 그 구성과 형태에 있어서 고전주의 양식의 선구자인 니콜라 뿌생(Nicolas Poussin, 1594~ 1682)이 미래를 위한 프랑스 미술의 본격적인 발판을 마련했다.

2) 고전주의

루이 14세 때의 궁정 작가였고 구성에 있어서 건축적 특성으로 인해 고전주의의 정수에 도달했던 르 브뢩(Le Brun, 1619~1690) 이후, 18세기에 접어든 프랑스 회화는 와또(Watteau, 1684~1721)의 화풍과 더불어 이제까지와는 다른 부드러움과 섬세함의 매력을 지니기 시작했다. 와또는 자신의 완성된 기법과 독특한 분위기 묘사로 행복했던 시절의 파리의 삶을 그려나갔다. 이후 전원과 친숙한 신화에 몰두했던 부쉐(Boucher)와 역시 시골의 풍경을 주된 소재로 삼았던 프라고나르(Fragonard)가 와또의 뒤를 이었다. 당시의 귀족 사회는 깡땡 드 라 뚜르(Quentin de la Tour)의 화폭에 의해 잘 묘사되었고, 중산층과 농촌 사람들의 소박한 인상은 주로 샤르댕(Chardin)과 그뢰즈(Greuze)의 화폭에서 자주 눈에 띤다.

다비드(David, 1748~1825)와 앵그르(Ingres, 1780~1867)가 여전히 고전주의적 화풍을 견지하고 있던 18세기의 말엽에 일련의 낭만주의자들은 그들의 화폭을 다루는 전혀 다른 방식, 즉 전통적이고 객관적인 규범보다는 자신의 내면에 충실한 주관적인 방식을 모색하고 있었고, 기존의 모든 회화적 규범으로부터의 해방을 꿈꾸고 있었다. <다비드의 '나폴레옹'>

그들 중 대표적인 작가로는 단연 1824년작인 <메두사의 뗏목 Le Radeau de la Méduse>으로 현대의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제리꼬(Géricault)와 언제나 열정으로 긴장되어 있고, 미소년과 같은 섬세한 감성의 소유자인 들라크롸(Delacroix)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의 화폭에서는 이미 현대 회화가 겪게 될 모든 격정의 요소들이 예고되어 있었다. 프랑스에서 낭만주의 회화의 전통은 일반적으로 '풍경주의자들(paysagiste)'이라고 불리는 작가들에 의해 이어졌다. 이들은 적극적으로 자신들의 화폭에 다시, 그리고 적극적으로 자연을 도입했다. 1830년경에 파리에서는 꾸르베(Courbet)가 세계 회화사에서 프랑스 회화의 가장 값진 공헌이자 근대의 신호인 리얼리즘(réalisme)을 완성시키고 있었는데, 그의 리얼리즘 정신은 마치 오늘 날 모든 리얼리즘의 경구처럼 된 자신의 유명해진 말, 즉 "나는 천사를 본 적이 없으므로, 결코 천사를 그리지 않는다"는 말에 잘 함축되어 있다.

3) 인상주의

인상주의는 모든 측면에 있어서 완성된 회화적 혁명으로 간주될 수 있을 것이다. 일찍이 1865년 마네는 그의 작품 <올랭피아 Olympia>로 엄청난 스캔들과 파장을 야기시켰고, 폐쇄된 아틀리에 대신 들판으로 나가 수시로 변하는 광선을 직접 화폭에 담고자 했던 끌로드 모네(Claud Monet)와 시슬레(Sisley), 피사로(Pissaro)의 화폭도 당시로서는 가히 혁명적인 변화로 간주되었다. 드가(Degas)와 르누아르(Renoir)는 변화된 현대적 삶의 흔적들을 화폭에 옮기는데 열중했고, 반 고흐(Van Gogh)는 자신의 열정적인 색채와 터치로 새로운 시각의 장을 열었으며, 고갱은 퐁타뱅 화파와 더불어 <상징주의 symbolisme>를 시도하고 있었다. 결국 이같은 시대의 열기는 세잔느로 하여금 형태의 기하학적 본질에 관심을 갖도록 부추겼고, 세잔느의 실험은 그 이후에 도래할 <야수파 Fauvisme>와 <입체주의 Cubisme>를 위해 확고한 발판을 제공해주었다. <르누아르의 '노젖는 사람의 점심'>

4) 야수파

야수파들의 시기는 1905년경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마띠스와 블라맹크는 자신의 내면의 감성을 포착하고, 그것을 철저하게 색채의 파노라마로 압축하고 연출하고자 했다. 야수파가 자신의 내면을 천착하는 동안, 입체주의자들은 회화를 가능한 감성적인 차원으로부터 분리해 전적으로 형태적 실험에 귀속시키고자 했다. 그들은 이 실험을 위해 기꺼이 대상의 외양을 포기했고, 해체되고 분해된 형태의 조각들을 어떤 분석적이고 추상적인 질서에 의해 재구성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 블라크는 자신의 화폭에 나무나 종이 조각을 콜라쥬했다. 흔히 입체파로 알려진 스페인 태생의 피카소는 사실 모든 종류의 유파를 관통한 입지전적인 작가였다. 청색 시대와 분홍 시대를 거쳐 1907년의 <아비뇽의 처녀들>을 그리면서 입체주의의 대륙에 완착한 이후에도, 피카소는 쉴새없이 초현실주의와 표현주의의 경계를 넘나들었던 것이다. 야수파와 입체주의의 그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으면서, 원시적인 세계를 두루 모험했던 루소와 위트릴로(Utrillo)도 이 시기의 주목할만한 작가들이다. <루소의 '결혼'>

5) 초현실주의

1925년경, 끼리꼬(Chirico)를 필두로 시작되는 초현실주의는 잠재의식에 의해 인도되고, 몽환과 비 현실적 풍경에 의해 유지되는 새로운 차원의 세계를 선보인다. 거칠게 요약하자면, 초현실주의의 심리적 저변에는 대전과 그로 인해 잿더미로 변해버린 가슴 아픈 현실로부터의 도피라는 비극적 맥락이 흐르고 있었다. 대표적인 작가로 이브 땅기(Yves Tanguy)와 살바도르 달리, 르네 마그리뜨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이밖에도 세계의 진정한 예술의 진원지로서 파리의 마지막 시대를 장식한, <에꼴 드 파리 Ecole de Paris>의 연대에 참여했던 샤갈과 모딜리아니는 혁신적이지는 않지만 조용한 자신들의 탐색을 출발시키고 있었다. <에꼴 드 파리>는 수많은 외국 작가들을 당시 추상과 구상의 논쟁으로 한껏 달아오른 파리로 모으는 하나의 구심점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모딜리아니의 '푸른눈의 여인'>

6) 신사실주의

회화적이고 그림이 될만한 것들에 관한 전통적인 규범을 수학과 형식 실험으로 대체시키면서 추상 회화의 양식을 발견한 칸딘스키와 몽드리앙의 뒤를 이어 많은 추상 작가들이 마띠스의 모색과 큐비즘의 대를 이으면서 회화로부터 보다 순수한 것들을 읽어내고자 했다. 바로 이 지점에서 1946년의 <살롱 데 레알리떼 누벨 Salon des Réalités nouvelles>, 57년의 <살롱 드 메 Salon de Mai>등을 통해 애르뱅(Herbin)과 대롤르(Deyrolle), 마띠외가 스캔들과 함께 두각을 드러냈다. 특히 이들의 추상적 행태들이 핵 분열적이고, 생화학적인 동시대적 참조를 지닌다는 것은 주목할만한 사실일 것이다.

추상 회화의 전진적인 주도권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작가들은 프랑스의 전통적인 형상 회화와의 인연을 계속 유지하고 있었다. 이들에게는 형상이 여전히 의미있는 것이었는데, 왜냐하면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형식의 순수함이나 조형적 실험이 아니라, 여전히 익숙한 형상들을 통한 소통으로서의 예술이념이었기 때문이다. 이들 중 1948년 <진보적인 레알리즘 Réalisme progressiste>을 출발시켰던 앙드레 푸쥬롱과 삐뇽의 활약이 주목할만하다. 한편 다른쪽에서는 <증인 l'Homme témoin>의 기치아래서 현대인의 실존적 불안을 화폭에 옮기고자 했던 로르쥬와 희색과 검정색으로만 된 <미제라빌리즘 Misérabilisme>의 주인공 베르나르 뷔페(Bernard Buffet)등이 꾸준히 자신들의 화폭을 소개하고 있었다. 바자랠리(Vasarely)는 순수하게 시각에 바쳐진 기하학적 추상을 실험하고 있었고, 포트리에(Fautrier)와 뒤뷔페는 모든 재현적 형상을 삭제한 <엥포르맬 Informel>의 선구자로 나서고 있었다.

대전 이후, 프랑스의 유명한 현대 작가들을 가장 많이 거느린 예술 운동으로는 1960년 미술 이론가이자 평론가인 삐에르 레스따니(Pierre Restany)가 그 발기를 선언한 <누보 레알리즘>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은 끊임없이 변하고 움직이는 시대적 진실에 유의하고자 했으며, 그 대표적 작가로는 세자르와 아르망, 고철과 모터로 움직이는 조각의 길을 열어 놓은 땡글리(Tinguely) 등을 들 수 있다. <세자르의 '자유 인간'>

1970년대로 들어서면서 사회주의 정부의 후원, 68혁명의 에너지와 더불어 많은 젊은 작가들이 <신형상회화 Nouvelle Figuration>라는 회화운동 하에 모였는데, 이 운동은 참여적 성향과 함께 동시대의 정치, 사회적 사건으로부터 회화의 주제를 얻었고, 당시 지배적인 추상의 순수주의에 저항하기 위해 다시 구체적인 형상 이미지들을 사용하였다.

80년대 이후로는 특별히 프랑스적이라고 할만한 경향을 언급하기가 쉽지 않은데, 그것은 단지 프랑스만의 문제는 아니다. 광통신과 인터넷의 시대를 맞아 세계의 지형도는 점점 더 단일한 하나로 축소되었고 그만큼 각 대륙간의 차이도 현격하게 감소해왔던 것이다. 아마도 새로운 세기에 있어서는 지역적인 정체감을 말하는 대신, 더욱 더 단일화된 어떤 신 국제적 양상이 우리의 주된 논의가 되리라는 예측이 현재로서는 지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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